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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의 키가 작아질수록

혼자인 것과 함께 혼자여야 한다 혼자인 것과 함께 혼자여야 한다. alone with the alone 더보기
중년의 뇌 중년의 뇌 맛을 느끼는 능력도 현저히 떨어지긴 마찬가지다. 에 따르면, 젊은 시절 약 2만종의 맛을 구별하던 인간은 나이가 들면서 1만 종의 맛을 섬세하게 구별하기도 버거워진다. 어머니의 음식 솜씨가 예전 같지 않다고 가족 모두가 느끼지만, 그걸 못 느낀 건 어머니와 같이 나이 들어가는 아버지 뿐이다. 더보기
인생의 중년 인생의 중년 신경과학자들이 정의한 '인생의 중년'은 나이 45살때부터 68살까지다. 즉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때다. 평균 수명이 70년을 훌쩍 넘은 이 시대에 조직 내 리더로서의 삶은 대개 중년의 문턱에서 시작한다. 좁게는 팀의 리더에서, 넓게는 한 기업의 최고 경영자까지. 중년의 우리는 리더의 삶을 맞는다. 더보기
끝까지 이럴래? 끝까지 이럴래? 비움이 있어야 채움이 있다. 어쩌다 다 채웠다. 다른 채움을 위해서 어떻게 비워야 할까 고민이다. 100일 전, 마음 속의 커다란 유리병을 만들었다. 그곳에 글을 하나씩 채워 넣었다. 영약하게도 100일을 다 채웠다. 가득 채운 유리병을 들어 올린다. 제법 묵직하다. 유리병 안을 응시한다. 영롱하게 글들이 반짝인다. 반갑고 고맙다. 이 유리병에 이름표를 붙이고 싶었다. 한참을 생각해봐도 아름다운 이름이 없다. 멋진 이름이 없다. 그 의미를 다 슬쩍 드러낼 이름이 없다. 그냥 포기했다. 이름이 없는 것은 인식될 수 없다고 했는데 내 마음 속에 너무 선명하다 . 이름 대신 그 탄생의 기간을 적어 놓았다. '2016년 4월 23일부터 7월 31일, 100일*, 평생 기억될 그 시간'으로 적었다.. 더보기
찾다, 내가 글 쓰는 이유를 찾다, 내가 글 쓰는 이유를 그간 매일매일 써 왔던 글들의 제목들을 찬찬히 살폈다. 어떤 글은 내가 생각해봐도 참 괜찮은 놈이 있었고, 어떤 글은 할당량에 밀려 쭉정이를 길렀다. 어떤 글을 쓰며 미안함을 대신하였고, 어떤 글을 쓰며 현재의 나를 위로 했으며, 어떤 글을 쓰며 마음을 다잡고 더 나은 내일을 기도하였다. 그랬다. 난 글을 쓰며 웃었고, 울려고 했고, 달랬고, 기도했다. 이 모든 것을 통해 난 내가 글 쓰는 이유를 찾았다. 글은 선물이였던 것이다. 주는 이는 '나'이지만, 이 선물을 받는 이는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와 미래의 나일 수 있으며 혹은 주변 사람들, 나아가 불특정한 대상임을 알게 되었다. 유시민 작가는 조지 오웰의 말을 인용하여 글을 쓰는 이유를 4가지로 구분하였다. 첫째, 자기 자.. 더보기
글 헤는 밤 글 헤는 밤 여름이 지나가는 빗소리에는 마음 속 못 써낸 글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빗소리의 글들을 다 헤일 듯 합니다. 책상에 떨어지는 하나 둘 글들을 이제 다 못헤는 것은 쉬이 글감이 떠오르지 않는 까닭이요 그 글이 좋지 못할까 두려운 까닭이요 아직 제 글쓰기에 머뭇함이 있는 까닭입니다. 글 하나의 추억과 글 하나의 후회와 블 하나의 아쉬움과 글 하나의 행복과 글 하나의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글 하나의 아름다운 말 한문장씩 써 봅니다. 초등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친구들의 이름과 J,K,제라미 바디, 라이언 일병 이국 청년들의 이름과 파리지옥, 안테, 비틀즈, 프레드릭 강원국, 이사오사사키, 푸시킨 이런 시인의 이름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 멀리 있습니다. 글쓰기가.. 더보기
형제는 용감하지 않았어도 엣지가 있다 형제는 용감하지 않았어도 엣지가 있다 점심시간으로 기억한다. 동료들끼리 각자의 형제에 관한 이야기를 주제로 삼았다. 신기했던 것은 터울에 관계없이 모두들 동생, 형, 누나들과 사이가 좋았다는 점이었다. 뭔가 불안해졌다. 아니나 다를까. 대리님이 그럼 남동생은 어디에 사냐고 했을 때 말문이 막혔다. 서울에 사는 동생의 자취집 지역에 생각나지 않았다. 도통 말을 해 본 적이 없으니 알 수가 있나. 겨우 신촌이라 말했고 직장은 강남으로 안 다고 했을 때, 그럼 왜 같이 살지 않냐고 했다. 둘러대기는 했으나 결론은 한 가지였다. 하늘 아래 원수지간이기 때문이다. 두 살 아래 남동생과는 정말 친하지도 이야기도 없다. 일년에 고작 명절에 만나 왔냐, 가냐 두 마디만 한다. 같이 있어도 할 이야기도 없다. 어렷을 적.. 더보기
젊은이, 아직은 더 할 때지 젊은이, 아직은 더 할 때지 중학교를 마치고, 낡은 나무문을 열어 몇 발자국 걷고 나면 안방에 도달았다. 그리고 어김없이 아버지가 나를 맞아 주었다. 어두운 방에서 홀로 바둑 프로그램만 보고 계시던 아버지의 모습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무기력해 보였던 아버지를 위로 했던 것은 담배 몇 개피 뿐이었다. 학교에 갔다 왔다는 말과 함께 교복을 벗을라 치면 아버지는 보일러를 돌려 본격적으로 나갈 준비를 하셨다. 그러다 매번 새벽에 들어오시는 것이 아버지의 일과였다. 그렇게 7년 가까이, 아버지의 말대로 돈 한 푼 벌어오신 적이 없다. 중학교부터 가난은 우리 가족의 주홍글씨처럼 가슴에 새겨졌다. 시간이 지날 수록 아버지란 사람에 대해 알게 되었다. 유년시절, 아버지는 양계장집 책임자로서 순박하시고 성실했던 사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