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이럴래?
비움이 있어야 채움이 있다. 어쩌다 다 채웠다. 다른 채움을 위해서 어떻게 비워야 할까 고민이다.
100일 전, 마음 속의 커다란 유리병을 만들었다. 그곳에 글을 하나씩 채워 넣었다. 영약하게도 100일을 다 채웠다. 가득 채운 유리병을 들어 올린다. 제법 묵직하다. 유리병 안을 응시한다. 영롱하게 글들이 반짝인다. 반갑고 고맙다.
이 유리병에 이름표를 붙이고 싶었다. 한참을 생각해봐도 아름다운 이름이 없다. 멋진 이름이 없다. 그 의미를 다 슬쩍 드러낼 이름이 없다. 그냥 포기했다. 이름이 없는 것은 인식될 수 없다고 했는데 내 마음 속에 너무 선명하다 . 이름 대신 그 탄생의 기간을 적어 놓았다. '2016년 4월 23일부터 7월 31일, 100일*, 평생 기억될 그 시간'으로 적었다. 장식장에 넣고 멀찍이서 다시 본다. 다시 꺼낼 날이 오리라 말이다.
가슴 속에 스멀스멀 물음표가 형성된다. 끝까지 이럴거냐고. 끝까지 이러는 게 뭔지 다시 되물었다. 끝까지 쓸 것이냐고. 목을 한 번 풀고 양 덧니를 슬쩍 건드려 또박또박 대답할 준비를 끝낸다. 냉큼 당연하다고 대답했다. 내 이야기는 끝나지 않을 거니까.
*100일을 글쓰고 나니 드는 생각이 있다. 대한민국에 유명한 곰이 아빠곰, 엄마곰, 애기곰, 그리고 사람 된 곰이 있다. 사람 된 곰이 정말 100일 동안 동굴에서 다이어트 식품만 먹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다만, 무려 100일 동안 그 고생했으면 사람이 아니 될 수 없었다고 생각된다. 나에게 100일이란 그런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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