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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의 키가 작아질수록/생각을 모음과 자음의 만남으로

형제는 용감하지 않았어도 엣지가 있다

 형제는 용감하지 않았어도 엣지가 있다

 

 점심시간으로 기억한다. 동료들끼리 각자의 형제에 관한 이야기를 주제로 삼았다. 신기했던 것은 터울에 관계없이 모두들 동생, 형, 누나들과 사이가 좋았다는 점이었다. 뭔가 불안해졌다. 아니나 다를까. 대리님이 그럼 남동생은 어디에 사냐고 했을 때 말문이 막혔다. 서울에 사는 동생의 자취집 지역에 생각나지 않았다. 도통 말을 해 본 적이 없으니 알 수가 있나. 겨우 신촌이라 말했고 직장은 강남으로 안 다고 했을 때, 그럼 왜 같이 살지 않냐고 했다. 둘러대기는 했으나 결론은 한 가지였다. 하늘 아래 원수지간이기 때문이다.

 

 두 살 아래 남동생과는 정말 친하지도 이야기도 없다. 일년에 고작 명절에 만나 왔냐, 가냐 두 마디만 한다. 같이 있어도 할 이야기도 없다. 어렷을 적의 안 좋은 추억과 상처들이 이제는 어떻게 메울 수 없다고 생각된다. 어린 시절, 장남인 내가 좀 더 조부모와 부모님의 기대가 컸던 것 같다. 다만, 특별한 편애는 없었다. 동생은 설날에 받는 세뱃돈 액수가 차별이라 주장하나 그러든지 말든지 했다. 재화가 한정적이니 작은 것에 으르렁거리다 싸우기도 엄청 싸웠다.

 

 동생에게 형이란 나는 치사한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 같다. 심부름을 시켰는데 내가 사오란 것을 안 사왔다고 때렸단다. 독후감을 써 달랬을 때, 삼국지 도원결의 1편을 원고지 기준 4장인가 써주고 8천원을 받았다고 한다. 초등학생으로서는 어마어마한 돈이었다는 주장과 함께 말이다. 거기까지는 어떻게 하겠는데 이웃집 어머니 친구 아들 독후감은 장차 10장을 무료로 정성스럽게 써줬다고 목청을 돋운다. 자신의 형이 맞는지 의심스럽다는 주장과 말이다. 나 또한 반박할 자료는 넘친다. 문방구 아주머니가 물었다. 동생이 자기 친구 아이스크림은 사 주지만 나는 안 사주는 것에 어떻게 형에게 그럴 수 있냐 물어봤지만 동생은 이를 무시했다. 서로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준 것은 분명 맞는 말이다.

 

 다행이도 잘해준 것이 하나 없지만 동생은 참 잘 자란 것 같다. 중학교부터 공부에 두각을 나타내더니, 점차 학교 선생님들이 내 동생 이름 확인을 먼저하기 시작했다. 경쟁이 두려워 상급학교 진학을 포기하였지만 동생은 줄곧 시외 고등학교를 가고 싶어했다. 집안 사정으로 고향 고등학교를 입학하였을 때 수석이었다. 난 학비가 두려워 서울의 학교는 목표로 삼지 않았다. 동생은 무조건 서울로 가겠다고 했다. 철없는 소리라 생각했고 정말 저런 말로 부모님께 걱정을 끼쳐드려야 했나 싶었다. 그런데 정말로 4년 전액 장학금으로 서울의 유명 학교에 합격했다. 끼도 많아 고등학교 때 비트박스 공연단을 만들어 옆 여자 고등학교 축제에 초대되기도 했다. 이런한 모습들에 나 또한 동생에게 많이 배웠다.

 

 동생이란 존재를 생각하면 예전에는 미운 기억만 있었지만, 이제는 못 해준 기억만 더 생각난다. 초등학교 6학년 체육시간이었다. 동생네 4학년 전체 학생들이 운동장으로 나오더니 글라이더 날리기 시합을 가졌다. 동생을 비롯한 몇몇은 벌을 받았다. 전날 글라이더를 만들어 달랬는데 재주가 없어 이를 무시했었다. 글라이더를 만들지 못한 동생은 벌을 받았다. 손재주가 없는 내가 너무 싫었던 순간이다. 허리 디스크 문제로 'ㄱ'자로 몸을 굽어 학교를 다닌 시간에도, 여자친구와 군대 면회를 왔던 순간에도, 처음으로 나에게 선물을 사 준 순간에도, 전문자격증 취득으로 번듯한 직장에 취업을 하였을 때도 따뜻한 말 한마디 못해줬다. 그리고 이제는 그런 말조차 건낼 수가 없을 것 같다.

 

 비록 형 노릇은 예전에도, 앞으로도 잘 할 자신은 없다. 다만 멀리서 남아 동생을 가슴 끔찍히 응원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동생 또한 말은 안 하지만 그러리라 믿는다. 형제는 용감하지 않았지만, 각자의 영역에서 마음 속으로 응원하며 엣지있게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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