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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의 키가 작아질수록/생각을 모음과 자음의 만남으로

이 몸에 녹용즙이라니 이 몸에 녹용즙이라니 녹용즙을 며칠전부터 먹고 있다. 갑작스럽게 고모가 보내오신 것이다. '이 나이에 무슨 녹용즙이라니'라는 생각과 동시에 트로트 곡 '내 나이가 어때서' 가사가 떠올랐다. 만약 어머니가 이런 걸 보낸다고 한다면 무조건 결사반대를 했을 것이다. 고모가 보낸 것이라 군말 없이 받았다. 어머니는 안도하신 듯,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보냈다. '아들아, 자기전엔 꼭 먹어야된다. 이것은 엄니 명령이다.' 뚱한 이모티콘 하나를 답변으로 보내드렸다. 이 애물단지를 어쨌거나 먹고는 있다. 보약이 싫은 이유는 플라시보 효과 때문이다. 이걸 먹는다고 절대로 건강해지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정신부터 이러니 백약이 무효할 것이다. 이런 약에 의존하여 건강해지기 싫다. 물론, 약이 필요한 사람도 있을 .. 더보기
끝까지 이럴래? 끝까지 이럴래? 비움이 있어야 채움이 있다. 어쩌다 다 채웠다. 다른 채움을 위해서 어떻게 비워야 할까 고민이다. 100일 전, 마음 속의 커다란 유리병을 만들었다. 그곳에 글을 하나씩 채워 넣었다. 영약하게도 100일을 다 채웠다. 가득 채운 유리병을 들어 올린다. 제법 묵직하다. 유리병 안을 응시한다. 영롱하게 글들이 반짝인다. 반갑고 고맙다. 이 유리병에 이름표를 붙이고 싶었다. 한참을 생각해봐도 아름다운 이름이 없다. 멋진 이름이 없다. 그 의미를 다 슬쩍 드러낼 이름이 없다. 그냥 포기했다. 이름이 없는 것은 인식될 수 없다고 했는데 내 마음 속에 너무 선명하다 . 이름 대신 그 탄생의 기간을 적어 놓았다. '2016년 4월 23일부터 7월 31일, 100일*, 평생 기억될 그 시간'으로 적었다.. 더보기
찾다, 내가 글 쓰는 이유를 찾다, 내가 글 쓰는 이유를 그간 매일매일 써 왔던 글들의 제목들을 찬찬히 살폈다. 어떤 글은 내가 생각해봐도 참 괜찮은 놈이 있었고, 어떤 글은 할당량에 밀려 쭉정이를 길렀다. 어떤 글을 쓰며 미안함을 대신하였고, 어떤 글을 쓰며 현재의 나를 위로 했으며, 어떤 글을 쓰며 마음을 다잡고 더 나은 내일을 기도하였다. 그랬다. 난 글을 쓰며 웃었고, 울려고 했고, 달랬고, 기도했다. 이 모든 것을 통해 난 내가 글 쓰는 이유를 찾았다. 글은 선물이였던 것이다. 주는 이는 '나'이지만, 이 선물을 받는 이는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와 미래의 나일 수 있으며 혹은 주변 사람들, 나아가 불특정한 대상임을 알게 되었다. 유시민 작가는 조지 오웰의 말을 인용하여 글을 쓰는 이유를 4가지로 구분하였다. 첫째, 자기 자.. 더보기
글 헤는 밤 글 헤는 밤 여름이 지나가는 빗소리에는 마음 속 못 써낸 글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빗소리의 글들을 다 헤일 듯 합니다. 책상에 떨어지는 하나 둘 글들을 이제 다 못헤는 것은 쉬이 글감이 떠오르지 않는 까닭이요 그 글이 좋지 못할까 두려운 까닭이요 아직 제 글쓰기에 머뭇함이 있는 까닭입니다. 글 하나의 추억과 글 하나의 후회와 블 하나의 아쉬움과 글 하나의 행복과 글 하나의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글 하나의 아름다운 말 한문장씩 써 봅니다. 초등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친구들의 이름과 J,K,제라미 바디, 라이언 일병 이국 청년들의 이름과 파리지옥, 안테, 비틀즈, 프레드릭 강원국, 이사오사사키, 푸시킨 이런 시인의 이름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 멀리 있습니다. 글쓰기가.. 더보기
형제는 용감하지 않았어도 엣지가 있다 형제는 용감하지 않았어도 엣지가 있다 점심시간으로 기억한다. 동료들끼리 각자의 형제에 관한 이야기를 주제로 삼았다. 신기했던 것은 터울에 관계없이 모두들 동생, 형, 누나들과 사이가 좋았다는 점이었다. 뭔가 불안해졌다. 아니나 다를까. 대리님이 그럼 남동생은 어디에 사냐고 했을 때 말문이 막혔다. 서울에 사는 동생의 자취집 지역에 생각나지 않았다. 도통 말을 해 본 적이 없으니 알 수가 있나. 겨우 신촌이라 말했고 직장은 강남으로 안 다고 했을 때, 그럼 왜 같이 살지 않냐고 했다. 둘러대기는 했으나 결론은 한 가지였다. 하늘 아래 원수지간이기 때문이다. 두 살 아래 남동생과는 정말 친하지도 이야기도 없다. 일년에 고작 명절에 만나 왔냐, 가냐 두 마디만 한다. 같이 있어도 할 이야기도 없다. 어렷을 적.. 더보기
젊은이, 아직은 더 할 때지 젊은이, 아직은 더 할 때지 중학교를 마치고, 낡은 나무문을 열어 몇 발자국 걷고 나면 안방에 도달았다. 그리고 어김없이 아버지가 나를 맞아 주었다. 어두운 방에서 홀로 바둑 프로그램만 보고 계시던 아버지의 모습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무기력해 보였던 아버지를 위로 했던 것은 담배 몇 개피 뿐이었다. 학교에 갔다 왔다는 말과 함께 교복을 벗을라 치면 아버지는 보일러를 돌려 본격적으로 나갈 준비를 하셨다. 그러다 매번 새벽에 들어오시는 것이 아버지의 일과였다. 그렇게 7년 가까이, 아버지의 말대로 돈 한 푼 벌어오신 적이 없다. 중학교부터 가난은 우리 가족의 주홍글씨처럼 가슴에 새겨졌다. 시간이 지날 수록 아버지란 사람에 대해 알게 되었다. 유년시절, 아버지는 양계장집 책임자로서 순박하시고 성실했던 사람.. 더보기
달려라, 할매 달려라, 할매 대학교에 입학 날 무렵, 할머니는 우리집을 찾아온 같은 대학교에 다니고 있는 친척형에게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가 다니는 그 대학에 우리 장호도 가게 되었데. 그러니 너가 잘 봐줘야 한다. 응? 알았지?' 웃으며 그러겠다는 친척형의 대답에 만족하시며 한 마디 더 보태셨다. '근데 넌 몇학년 몇반이니?' 일순 식구들의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할머니는 늘 그러셨다. 손주들 사랑이 극진하였고, 아이 같이 순수하셨다. 그런데 할머니와 같이 산 긴 시간들 속에서 그것을 이해한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다. 야속하다. 어렷을 적, 유독 할머니가 제일 싫었다. 잔소리만 하셨기 때문이다. 밝은 데 불은 왜 켜놨냐, 그렇게 엄마를 찾아서 뭐하냐, 동생하고 싸우지 마라, 애 어멈은 왜 애들 옷을 새로 사 주.. 더보기
yesterday, 비틀즈 yesterday, 비틀즈 그런 날이 있다. 잊혀졌던 노래가 떠오르고, 머리 속에서 오랜 버퍼링 끝에 재생되고, 재생되기 무섭게 곧 스트리밍 종료를 알려 올 때가 있다. 그렇다면 인정사정 볼 것 없이 그 노래를 찾아 들어야 하루 운수가 대통할 것 같다. 그런 날이 오늘이고 그 노래가 비틀즈의 yesterday다. 아침부터 J집에서 yesterday를 듣고 있다. 당연히 소리를 빽빽지르며 말이다.(참고로 J는 이 모든 상황을 달관한 듯 컵라면을 끓이고 있다. 야! 내꺼 OK?) 비틀즈의 이 노래가 사랑받는 이유가 셀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딱, 첫 소절이 너무나 좋다. 자신의 모든 문제가 어제는 멀어져가는 것처럼 보였다는 부분 말이다. 누구나 그렇지 않나 싶다. 스탠드 불빛 아래서 하루를 정리할 쯤, 걱..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