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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의 키가 작아질수록/생각을 모음과 자음의 만남으로

우리의 카카오톡 이야기

순이에게

 

왠일로 카카오톡 메시지를 주었나 했다. 안 하던 짓 하면 안 된다고 했던가. 회시에서는 매분 바빠서 휴대폰 살 필 일이 없는데, 옆 부서 대리 전화에 짜증이 머리를 뚫고 나올 기세였지. 그래서 한 번 휴대폰 봤다 '헉'했다. 요즘 제일 '핫'하다는 연애인 유출 의혹 사진이더군. 가뜩이나 여자도 많은 회사에서 누군가 뵜다면 난 그 길로 무슨 욕을 먹었을까 상상해봤다. 아무튼, 고맙긴 했다 녀석아.

 

우리가 늙었을 때, 아니면 늙어간다고 느꼈을 때, 자식과 아내가(안 올거 같다도 일단 이렇게나 믿어보자) 있지만 여전히 삶은 외로운 것이고 혼자라 느끼질 순간이 왔을 때, 우리만의 단체 카톡방에는 우리의 부모들과는 달랐으면 좋겠다. '오늘의 이야기' '힘이 되어주는 말' '누구누구의 격언' '열정을 주는 만화' 같은 것도 좋겠지. 어쨌든 서로를 격려하고 함께 하는 마음이 있으니까.

 

그런데 말이다. 우리가 비록 솔직히 하루하루에 일어난 일들을 시시콜콜하게 살갑게 주고 받는 성격들은 아니지만,(차라리 쌓고 쌓아서 명절날 2차까지 이어지는 술자리에서 쏟아내는 것을 더 행복하게 생각하는지도 모르겠지만 말야) 우리가 늙어서 이러한 말들을 주고 받지 않았으면 한다.

 

그것보다는 말이다. 세간에 가장 주목을 끄는 '카더라' 소식이나 사진을 공유하며 득거리고, 낚시나 가서 잡았던 쏘가리 사진(작살로 잡은 거 말고 언젠가는 낚시대로 잡을 그 쏘가리)을 보며 옛날을 추억하고, 다음에 만나 술이나 먹을 날들을 기약했으면 좋겠다. 여름과 겨울에는, 산속과 강가로 들어가 낚시나 할 계획 구상하는 그런 삶을 살았으면 한다. 그런 이야기들을 주고 받으며 살았으면 한다.

 

그렇게 소년은 늙지만 철들이 않는다는 걸 보여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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