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세상의 보석
우물쭈물 하다가 그럴 줄 안 하루를 보냈을 때, 유치원을 다닌 적은 없지만 꼭 유치원에서 가르칠 것 같은 피노키오의 노래가 떠오른다. '피아노 치고, 미술도 하고, 영어도 하면(이거 분명 영어 아니었는데 요즘 이렇게 바뀌었다!) 바쁜데, 너는 언제나 놀기만 하니, 말썽쟁이 피노키오야!' 설마 유아들의 동요에 놀지도 말고 공부만 하라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자꾸 요즘들어 이 노래가 자꾸 개사되어 맴돈다. '야근도 하고, 운동도 하고, 영어도 해야하는데, 너는 어째서 글을 쓰기로 했니, 대책없는 최장호야!'
글을 매일매일 쓰기로 각오를 한지 1주일이 지났다. 글은 주로 새벽에 쓴다. 혹시나 하는 일이 발생할까봐 불안해서다. 무엇을 쓸까 고민을 한다. 글감의 고갈이 이렇게 무서울 줄은 몰랐다. 예전에 썼던 글들을 다시 봐도 쓸만한 것이 없다. 자취방의 하얀 벽에 머리를 살짝 박으면 뭔가 '툭'하고 떨어졌으면 좋겠다 생각한다. 밀린 신문과 주간지들에서 단서를 찾을 수도 있겠는데, 거기까지 시간을 내기가 힘들다. 집중력 있게 쓰지 못해 1시간 정도 걸린다. 글을 쓰기 전에 '아, 또 1시간 걸리겠네' 생각을 하니 시작부터 버거움을 느낀다.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두려운 시선으로 걸어온 길을 돌아본다. 일주일 사이, 내가 나한테 내놓은 7편의 글을 다시 본다. 어떤 글은 글감이 아까운 글도 보이고, 어떤 글의 문장들은 너무 길다. 그래도 한 편의 글을 읽으니 느낌이 새롭다. 살아오면서 나에게는 인색했다. 이쁜 구석 하나 없는 거 잘 알지만, 내 글에는 '보석'이라는 이름을 부여하고 싶다. 아무렴 내가 내 글을 '보석'이라 한들 누가 뭐라 하겠는가. 하루 1/24시간, 인고의 시간을 들여 '보석'을 내놓는 시간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고 생각된다. 아! 그리고 그러한 보석들이 매일 십여개가 나에게 쏟아진다. 출근시간 음악을 들으며, 점심시간까지 업무 이야기가 나올 때, 일에 치여 졸음이 쏟아질 때 슬쩍슬쩍 본다.
책장의 글쓰기 책들을 다시금 꺼내 정리하고, 블로그에 메모를 하였던 짧은 글들을 다시 보며 의미부여를 시작한다. 어깨에 잔뜩 든 힘을 가볍에 '으쓱으쓱' 움직여 뺀다. 결국 실적도, 경쟁도, 누가 정해준 것도 일도 아닌 나만의 길이기에 부담도 줄어든다. 유치원을 다닌 적은 없지만 꼭 유치원에서 가르칠 것 같은 ABC 노래가 개사되어 시작된다. '힘써 힘써 글쓰자, 만들다 만 보석 하나 없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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