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아오면서 가장 잘 한 일
지방 방송사의 기자 면접, 저녁 6시가 지났고 맨 마지막 대기자였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오전에 치른 카메라 면접의 영향이었는지 참 형식적이게 면접이 진행되었다. 면접관들도 자신들의 성의없는 태도에 미안했는지 자세를 고치고 마지막 질문이라며 물었다. 세상을 살아오면서 가장 잘했다고 생각한 일은 무엇이냐고. 기회라 생각했다. 그러나 망설였다. 이걸 말하고 합격한 적이 없다. 그래도 기자면접이니 자신있게 말을 꺼냈다. '시위에 참가한 적이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세상이 강요하는 옳지 않은 길을 위해 내 생각을 당당하게 말한적이 있다고. 그것이 기자가 가져야 할 정신이 아니겠냐고 말했다. 면접관들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결과는 또다시 탈락이었다.
2013년 4월쯤으로 생각한다. 공공기관을 준비하는 카페가 뒤집어졌다. 정부가 나한테 묻지도 않고 이른 바 '청년고용촉진특별법'을 발의하였다. 만 29세 이상을 '청년'이 아닌 '무언가'로 규정하고(그럼 만 30세부터는 장년인냐), 기관의 크기에 비례하여 3%는 무조건 청년으로 채용해야 한다는 규정이었다. 500명 기업이 20명을 뽑는다면, 3%인 15명은 '청년'으로 뽑아야 하고 나머지 5자리를 두고서 '무언가'들이 경쟁해야 한다는 법이었다. 이 법에 해당되는 '장년'들과 곧 '청년'에 해당되지 않게 되는 이들 사이에서 혼란이 왔다. 어떤이가 헌법소원을 냈다. 거기에 뜻을 동조하는 몇몇이 집회를 열자고 하였다. 그리고 다같이 뜻을 모아 연대하자고 했다.
현충일날 서울로 올라가는 기차에서 내가 왜 거기를 가고 있나 이유를 찾았다. 솔직히 군대까지 포함된다면 난 이 법에 포함되지 않았다. 설마 만 29세까지 취업은 어떻게, 어디든지 해야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뭔가 찜찜했다. 내 일이 아니지만 내 동생, 주변 누군가의 일이 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이 함부로 정한 부당한 일에 맞서고 싶은 치기도 솟았다. 누군가의 뒤에 숨어 내 일은 맡기기는 싫었다. 그리고, 그 '연대'라는 단어가 참 따뜻하게 느껴졌다. 아니, 느끼고 싶었다.
서울광장에는 약 80여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여자 한 분이 마스크를 나눠주었다. 나는 안 쓰겠다고 했다. 사진이 찍히면 취업에 지장이 있을 수 있다고 마스크를 꼭 착용하라 권했다. 고맙지만 사양한다고 했다. 그리고 피켓을 들고 구호를 따라 외쳤다. 신문사에서 나온 기자들이 사진을 찍었고, 다음날 기사에 80명 중 얼굴이 나온 사람은 나 하나였다. 겁은 났지만 후회는 없었다. 누군가 시민들에게 청년고용촉진법 폐지 서명을 받아달라고 했다. 내가 하겠다고 하였다. 정말 열심히 사람들을 붙잡았다. 짧은 시간 내 호소력있게 설명을 해야했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다시 한 번 부탁을 해야했다. 아까 그 여자가 참 고맙다고 말했다. 이거라도 할 수 있어 다행이라 답했다.
휴일에 서울광장의 많은 사람들이 시위대를 지나갔고 몇몇은 관심을 눈길을 보내주다 총총히 사라졌다. 그래도 좋았다. 우리의 목소리를 내는 것에 이유 모를 힘이 났다. 국회의원 한 명이 직접 찾아와 국회 차원의 재검토 노력을 다짐했다. 막판에는 자원자를 중심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시간도 가졌다. 누군가는 울었고 누군가는 격려했다. 그렇게 시위가 끝나고 사람들은 흩어졌다. 나도 막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기차에서 생각했던 일을 집에 오자 마자 하였다. 시위에 대한 기록, 청년고용촉진법의 폐해, 그리고 취업준비생들의 이야기를 동영상으로 만들어 카페에 올렸다. 새벽이 지나 아침이 왔어도 피곤함을 몰랐다. 정말 이거라도 할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청년의 나이는 만 34세고 변경이 되었다. 3년의 한시적 시행이라는 단서가 붙었으나 결국 위헌이 아닌 합헌의 결정이 났다. 아쉽다. 다만 세상을 살아오면서 가장 잘 한 일 하나는 만들었다는 것에 스스로를 다독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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