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전을 만드는 시간
실패다. 인정하긴 싫지만 처참한 실패다. 첫 번째는 항상 성공인데 문제는 항상 나머지 두 번째에 온다. 김치전이랍시고 만든 한 조각을 조심이 집어 자세히 살핀다. 일단 겉표면에 기름기가 많다. 더 심각한, 가장 큰 문제는 그 겉이 다 익지 않고 미끌거리는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무엇이 잘못 되었을까. 부침가루와 찬물의 비율에 다시금 복기한다. '에라 모르겠다'라 외치며 간장맛에 다 먹어 치운다. 그래도 행복은 하다.
서울대입구 2번 출구 앞에서 오뎅(어묵이라 하며 왠지 맛이 안 나니까) 노점상보다 더 인기 있는 전집이 생겼다. 김치전, 부추전, 해물전과 식혜 등을 판다. 쉐프 아주머니께서는 땀 닦을 시간도 없이 연실 전을 부쳐대신다. 파마 스타일의 전형적인 대한민국형 보조 아주머니께서는 돈을 받고 주문을 외운다. 가격도 2,500원이어서 부담도 없다. 그 자리에서 부추전을 먹으면서, 그리고 부처전을 만드는 것을 유심히 살피면서 '그까이꺼' 나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솟았다. 근래 고모가 보낸 김치까지 냉장고에 김치가 팍팍 쉬어가고 있었으니까.
처음으로 김치전에 도전하는 순간, 먼저 김치를 아주 잘개 썰었다. 부침가루 뒷면에는 500g 당 물 4컵 정도의 800ml를 섞으라 하였다. 5~6인분 기준이라 하였다. 난 2인분만 만들 것이니 비율 계산에 들어간다. 계량컵에 부침가루 250g를 넣고 큰 그릇에 옮긴 다음 다시 400ml의 찬물을 재어 넣었다. 김치, 부침가루, 찬물, 그리고 홍고추, 청량고루를 섞었다. 걸죽할 때까지. 그리고 올리브유를 두른 프라이팬에 한 국자 옮겼다. '초로로로로로' 소리를 내며 드디어 김치전으로 변신을 해 갔다. 오! 이 감격이란! 드디어 김치전이란 것을 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방심 탓이었을까. 그 다음부터는 김치전 슬럼프가 찾아왔다. 김치전을 뒤집으려는 순간, 가운데가 '쩍' 갈라졌다. 요리저리 뒤집개를 김치전 아래로 살살 넣으며 넘기려해도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치가 너무 많아서 전의 무게 무거워진 탓이었다. 무시하고 뒤집었으나 일부는 넘어가고 일부는 그대로다. 따로따로 익기 시작한다. 미칠 노릇이었다. 두 개를 하나도 합칠려고 해도 불가능하였다. '전 하나 붙이지 못하는데 조국통일이야.'라는 쓸대 없는 생각까지 해본다. 모양까지 흉측하고 어떤 부분은 익고 어떤 부분은 익지가 않았다. 그래도 만든 건 항상 다 먹었다. 씁쓸히.
요즘 돈은 없고 출출할 때 김치전을 만들어 먹는다. 처음에는 김치도 잘게 써는 정성을 쏟았으나, 도마 씻기가 뒤찮아서 그냥 김치통의 김치로 넣는다. 부침가루와 찬물의 혼합에도 그리 신경 쓰지 않는다. 대장금의 가장 큰 능력은 맛을 그리는 능력이었다. 나도 머릿속으로 맛을 그리고 부침가루와 찬물을 혼합한다.(아직까지 부침가루와 찬물의 절대비율은 찾아내지 못했다.) 성공 여부를 떠나 딱 2장의 김치전을 휴대폰 카메라에 담는다. 그리고 주변 지인들에게 보낸다. 나 잘 먹고 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김치전을 만드는 시간, 내가 살아가는 시간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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