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하는 것은 기분이 좋다. 마치 내가 적는 것은 다 될 것 같은 기분이다. 체계적, 논리적, 효과적, 효율적, 생산적으로 살 수 있는 느낌을 준다. 그러나 계획하는 것에 끝나니 나란 사람이 지금까지 변화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오히려 그 반대면 이상한거지) 초등학교 6학년 때 교장선생님은 습관에 대한 영국 속담을 잘 인용하셨다. 꾸준히 무언가를 하면 습관이 되고, 습관이 모이면 결국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하셨다. 당시에는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지만, 응당 맞는 말이다. 변화는 시작하는 것에부터 출발하니까 말이다.
계획을 하고, 그것을 꾸준히해서 습관을 만들려는 시도는 참 많이도 했다. 특히, 직장생활을 하면서 신기했던 것이 있다. 작심삼일의 저주를 깨고자 단단히 벼른 삼일째에는 꼭 무슨 일이 생기는 것이었다. 일이 밀려 야근을 해야 하거나, 옆 부서의 상사 또는 후임이 저녁식사를 하자고 한다. (저녁식사로 쓰고 술로 읽는다) 그렇게 내가 밀어부친 계획과 습관 만들기는 3일을 넘는 경우가 없었다. 혹자는 작심삼일을 계속하면 된다는 신선한 이론을 주창하였는데, 아직 해보진 않았다.
계획의 성공과 습관의 정착화는 일단 작은 일이어야 했다. 영어 공부를 위해 매일매일 원서 읽기 강의를 끊었는데 자체 휴업이고, 미라클 모닝이란 책을 읽은 후 아침 알람을 5시에 맞췄다. 당연히 나는 듣지도 못했고 참다 못한 아내가 꺼줬다고 했다. 요즘 내가 정한 습관 하나는 'todo mate' 꾸준히 기록하기다. 하루가 끝나는 저녁에, 계획 관리 어플인 todo mate를 이용해서 다음날 해야 할 일을 정하고, 어제 하기로 하였던 오늘의 임무들을 실제 했는지 점검하는 것이다. 이 어플에 mate가 붙은 이유가 있는데, 내가 연동한 다른 사람과 어플을 함께 쓸 수 있다. 내 계획과 그 사람의 계획을 함께 볼 수 있고, 실천한 일에 서로 이모티콘을 붙여 줄 수 있기 때문이다.(몇 명까지 함께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난 총 4개의 큰 분류를 해 놓았다. 첫 번째 폴더는 학습, 두번째는 정리와 개인위생, 셋째는 아내와 관련된 일, 넷째는 건강한 '나'이다. 요즘 학습에는 매일 블로그에 글쓰기를 적는다(이 자리가 바로 영어 원서 읽기를 넣었었다.) 정리/개인위생 항목은 하루를 끝마칠 때 책상의 노트북 등을 치우고, 양치질 및 얼굴에 로션을 바르는 것이다. 아내와 관련된 세번째 폴더는, 회사일이 아무리 바빠도 오전/오후 중에는 한 번 연락하기와 저녁 설거지를 목표로 한다. 마지막은 건강을 위해 저녁을 조금 먹기, 아침 몸무게 측정이다. 내가 좋아하는 라문 스탠드 불빛 아래서 이 어플을 켜고 무슨 일을 하였는지 체크 표시를 한다. 그리고 그 다음날 할 일들을 설정한다.
단순한 작업이지만, 저녁에 딴 짓하다 그냥 자는 날도 많았고 하루를 안 하게 되면 계속 안 하게 되었다. 그래서, todo mate를 내게 제안한 아내에게 어플을 그냥 지워버리자는 이야기도 했었다. 또한, 이 어플의 치명적인 단점은 안 하게 된 일은 다음날로 넘길 수 있다. 즉, 못한 일에 대해 반성을 시키는 기능보다 '내일 하면 되니까'라는 안일함을 준다. 그래도, 스스로 한 약속을 얼마나 지켰는지 확인하고, 또 계획하는 소소한 재미는 충분히 주고 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이 하루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 것 같다고 하셨듯이, 하루 정리가 습관을 넘어 나를 바꿔 줄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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