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푸시킨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슬픔의 날은 참고 견디면
머지 않아 기쁨의 날이 오리니
현재는 언제나 슬픈 것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모든 것은 순식간에 지나간다
그리고, 지나간 것은 그리워지는 것이다
내가 외우는 몇 안 되는 시다. 작은 아버지가 쓰던 방에 작은 액자가 하나 있었는데 푸시킨의 이 시가 써 있었다. 제법 예쁜 액자였다. 푸시킨이 누군지도, 이 뜻이 뭔지도 모르고 그냥 외었다. 아니, 자연스럽게 내 머리에 각인되었다. 후에 푸시킨은 죽음도 참 시인처럼 맞이했다 생각했다.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그를 흠모하는 다른 남자와의 권총 대결에서 부상으로 죽었다고 알게 되었다. 또한,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갔을 때, 푸시킨의 동상이 보여 기념 사진도 찍었었다.(그 외장하드를 분실하여 10년의 추억을 날렸지만) 이 시에 대한 번역본이 많다는 것에 놀랐고 내가 아는 이 버전과 사뭇 다른 것도 여러 보았다. 번역이야 뭐가 맞든 뭐가 대수겠는가. 나에게 푸시킨의 "삶"은 위 버전 말고는 없다.
갑자기 근래에 이 시가 다시 떠오른 이유는 모르겠다. 아무래도 연말이지만, 코로나로 또는 각자의 이유로 팍팍한 현실을 견디는 사람들이 많아서였겠지. 어렸을 때, 친한 사람들이 힘들어하면 저 시를 써주거나 문자로 보내줬었다. 반응은 다들 좋았다. 본인의 힘든 이 순간은 곧 다가올 미래를 위한 필수적인 과정으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시의 내용이 마냥 좋은 것은 아니다. 현재는 언제나 슬프다니. 미래를 위해 현재를 감내하는 것은 어쩌먼 잔인한 말이다. 내 성격이 그래서일까. 사과를 먹을 때 빨강 부분은 제일 아껴 먹는 나를 보고 누군가 말했었다. 그렇게 먹으면 제일 맛없는 부분만 계속해서 먹는 거 아니겠냐고. 익은 부분부터 먹으면 맛있는 부분을 계속 먹는 것이라고.
2021년, 주변에 이 시를 소개해주고 싶은 사람을 떠올린다. 회사를 때려치고 농사를 짓기 시작한 재용이. 버젓이 이제는 사장님이 되었으니.... 아직은 너가 뿌려 놓은 씨앗이 대지를 뚫고 지천에 널릴 시기가 오지 않았으니 조금만 힘내라. 동순이는 또 직장을 옮길 것 같다. 능력이 되니까 보다 마음 맞는 사람들과 일하기를 바란다. 아내는 건강을 더 회복할 것이다. 먹는 것이 항상 스트레스여도 몸이 반응을 하는 것이니 속상해하지 말기를 빌어본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건강한 모습으로 올 것이다. 엄마와 아빠는 이제 더 재미난 2022년을 맞이하시길. 올해도 자식 걱정에 본인들은 돌보지 못한 건 아닌지 아쉽다. 회사사람들..... 일이 재미없으니 우리끼리라도 매일 얼굴을 보면서 재미나게 삽시다.
옛날에는 삶이 나를 속이지 않도록, 속인다면 그 대가를 치루게 하리라 눈을 두릅 뜨고 살았던 적이있다. 돌이켜보니 내 마음 같이 안 되는 일이 있더라. 속도가 빠른 직선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쉬어가고 생각하라는 의미의 굽은 길도 있었고 끝이 안 보이는 오르막도 있었다. 그 순간 순간이 다 지나가 이제는 추억이란 이름의 그리움이 되었다. 다시 이 시를 읆는다. 삶이 나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기를. 또 하나의 아련한 그리움이 지나가는 걸 놓치지 말고 여기에 남기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