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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의 키가 작아질수록/생각을 모음과 자음의 만남으로

[매블9] 바닷가 작업실에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 슈필라움의 심리학

 "슈필라움 - 주체적 공간 / 독일어 '놀이'와 '공간'이 합쳐진 '슈필라움'은 우리말로 '여유 공간'이라 번역할 수 있다. 아이들과 관련해서는 실제 '놀이하는 공간'을 뜻하기도 한다. 그러나 주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율의 공간'을 뜻한다. '물리적 공간'은 물론 '심리적 여유'까지 포함하는 단어다."

 

 교수였지만 이제는 화가의 삶을 살고자 노력(?)하는 듯 보이는 김정운 작가의 책이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다.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노는 만큼 성공한다' 등 이 분의 집필한 대부분의 책은 다 읽었다고 생각한다. 왜냐, 우끼니까. 글쓰는게 참 재미있다. 재미만 있냐. 번아웃을 대한민국에서 가장 초창기에 주창했을 정도로 앞을 보는 혜안도 새롭다.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는 2014년인가.... 새해를 혼자 넘기는 그 순간에 읽어서 너무 좋았다. 지금은 교수직은 내놓고 일본에서 3년 동안 미술 대학에소 공부를  한 뒤 돌아왔다. 여수에 화실을 마련해 자리잡고, 공간이 심리학에 대해 쓴 책이다. 

 

 책의 주된 이야기는 나만의 공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만의 공간이라...... 당연히 있어야 하고 필요하다. 어렸을 때, 난 나만의 공간을 너무나 원했다. 제대로 된 전용 공부방이 없었다. 어렷을 때는 예전의 작은 아버지 방을 썼었다. 아주 오래된 철제 책상, 스탠드로 부르기에는 무리가 있는 노란 형광등 스탠드가 전부였던 좁은 방이었다. 여기는 마치 별채인 마냥 안방과 아예 분리되어  있었고 매우 추웠다. 제약은 많았지만 나름 색종이로 공부방이라 꾸미면서 살았다. 그것만이 내 공간의 추억이다. 대학교 때는 자취도 함께 하고, 기숙사도 같이 쓰고 하면서 나만의 공간은 생각조차 못했다. 그래서 난 공간의 애착이 너무 컸다.

 

 결혼 생활은 공간에 대한 또 다른 고민을 주었다. 아내와 동의를 했던 것이, 거실에 TV를 두는 대신 책장을 놓고 커다란 책상을 둬서 도서관처럼 꾸미는 것이었다.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함께 거실에 책상을 써야 하니 나만의 공간이 없는 것이었다. 특히, 저녁에는 불을 끄고 스탠드를 켜야 하는 내 성향과 밝은 것을 선호하는 아내의 취향이 마찰을 일으켰다. 다행히도, 나만의 공간은 어렵지만 나만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에 이해한 아내는 가급적 거실에 있는 나를 내버려둔다.(아내는 말이 필요 없는 뜨개질을 좋아한다)

 

 여수의 바다가 보이는 근사한 화실을 갖고, 그동안 모아 놓은 책전시 창고를 가진 저자가 너무 부러웠다. 어떤 집을 마련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공간을 늘 상상한다. 언덕 중턱에 위치를 하여 옹기종기 모여있는 동네 주택들이 보이는 거실에 앉아, 해질녘 따뜻한 노을빛을 품은 책을 볼 수 있는 그런 공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