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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의 키가 작아질수록/생각을 모음과 자음의 만남으로

[매블12]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 김혼비


 축구의 '추가 시간'을 부르는 용어는 꽤 다양하다. 가장 많이 사용되는 말로는 인저리 타임(injury time)이 있겠고, 그밖에도 로스 타임(loss time), 에디드 타임(added time), 엑스트라 타임(extra time) 등이 있는데, 그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용어는 (우리나라에서는 별로 쓰이지 않지만) 스토피지 타임(stoppage time)이다. 스토피지 타임. 멈춰 있는 시간. 전광판의 시계는 멈춰 있지만 피치 위로는 시간이 계속 흐른다. 그 어느 때보다 밀도 높은 시간이. 앞으로 나의 축구도 그럴 것이다. 책 속 나의 이야기는 여기 멈추지만, 그 아래로 김혼비 시간은 계속 흐를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여자 축구 리그가 있다. 당연한거다. 하지만 그 경기들은 모두 무료란다. 책을 읽으며 처음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축구를 하는 여자인 사람의 글이다. 뭔가 특별한 것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여자 축구는 우아하고 호쾌하다니 구매를 안 할 수는 없었다. 여자들이 축구를 하는 것에는 무슨 이야기가 숨겨져 있을까.

 

 남자 축구는 4년마다 열광하는 월드컵도 있고, 주말마다 손흥민 경기를 기대하게 하는 영국 축구리그도 있다. 그리고 아시아리그에서 최상위에 위치하는 K리그가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여자축구도 세계적인 수준이긴 하다. 4년마다 열광하는 여자 월드컵에 출전은 힘겹지만, 몇몇 선수는 이미 해외 유명 여자 리그에서 뛰고 있다. 여자 축구는 비인기 종목이긴 하지만,  그렇게까지 우리 곁에 멀지 있지는 않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것 같다. 프로 경기가 그러하니 그것을 여자 축구 동호회는 말을 안 해도 짐작이 간다. 여자가 축구를 하냐는 의심과 비아냥부터, 기껏 남자팀들과 경기를 하면 선수 출신이 있다니, 봐줬는데 후회된다니 말을 하면서 무시하는 처사가 다반사였다. 

 

 그래도 글쓴이는 유쾌하다. 여성으로서 이 세계에서 겪는 불합리와 차별을 축구 경기에 투영시키고 호방하게 이겨낸다. 이미 그들에게는 승부는 중요한 것도 아니다.(어떤 경기는 꼭 이겨야 하는 경기도 있었지만) 축구를 하는 것 자체가 여자로서 살아가기가 이상하리 어려운 이 사회에 부딪침이다. 중요한 점이 또 하나 있었다. 그들은 혼자가 아니라 팀이라는 것이다. 실수에 격려를 해주고, 골대로 날라가는 공을 보며 모두들 한 골을 소원한다. 경기가 끝나면 소맥 한 잔을 하면서 서로를 돌아본다. 작가는 말한다. 그는 추가 시간에 강하다고. 전광판의 축구 시합 시간은 멈췄지만 자신의 시간은, 자신의 축구 이야기는 계속 흘러 갈 것이라고.  김혼비라는 작가를, 여자 축구 선수를 독자로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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