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ICA - 우즈벡(Oh! z Bek)/난 빨따리로 가련다 썸네일형 리스트형 외국에서 쓴 시 내 부모는 항상 마음의 짐을 짊어지고 살아왔네 해 준 것이 없어서 미안하고 해 줄 것이 없어서 미안하고 그래서, 항상 자식에게 미안해하는 다 큰 바보 내 부모 하늘이 따듯한 이 마음 들어주시고 지금의 이곳을 나에게 주셨다 나는 오늘도 그 시험대에 선다 ------------------------------------ 우즈베키스탄 해외 봉사활동이 내게는 큰 기회라 생각했고, 그래서 썼던 시였다. 지금봐도 참 촌스럽고 시는 내게 어울리지 않는 영역임에 틀림없다. 20대에 2편의 시를 썼는데 그 중 하나는 시 수업에서 A+를 받았다. 그 자신감으로 이 시를 나무판에 쓴 다음, 거울 옆에 놓아 틈틈이 보았었다. 외국과 군대를 가면 모두 효자 효녀가 된다고 했던 것 같다. 해외봉사활동의 기회를 부모님이 허락했던 .. 더보기 이제 생각하지 않으려고 이제 생각하지 않으려고 지금도 모르겠지만 알고 싶지 않은 것이 단 한가지 있다. 왜 우리 동기들의 사이가 소원해졌는지 말이다. 알 수는 있을 것이다. 현재도 나와 연락을 하고 있는 동기 한 명에게 그 때의 문제를 물어보면 된다. 다만, 그러고 싶지 않다. 알아서 뭐하겠는가. 그들이 나를 용서하든, 내가 그들을 용서하든 달라질 것은 없을 것이다. 하기사 용서한다는 단어 자체가 맞지도 않는 것 같다. 지인을 만드는 것, 평생이란 거창한 단어는 아니라도 좋은 친구를 만드는 것을 해외봉사활동의 제1 목표로 삼았다. 내 딴에는 온갖 노력을 다 했던 것 같은데 오히려 그게 좋지 않았나도 싶다. 지방 단원들이 수도에 오며 내 일은 접어두고 무조건 맞이하러 나갔다. 그들이 국외로 나갈때, 들어올 때는 어김없이 공항으로.. 더보기 미래 일기를 읽은 소감 미래 일기를 읽은 소감 2년 해외 봉사활동을 떠나기 딱 하루 전날 밤, 난 블로그에 봉사활동을 마치고 돌아온 가상의 일기를 썼다. 봉사단이 생긴지 초창기에 해외봉사활동의 길을 열었던 선배가 한 말이 마음에 남았기 때문이다. '봉사활동을 가기 전에 하고 싶은 것을 모두 꿈꾸세요. 그러면 다 이루어서 돌아올겁니다.' 이 말에 이끌려 난 2년 후 입국 모습을 미래일기 형식으로 남겼다. 제목은 '더없이 행복했던 2년의 시간들, 봉사활동을 마치고'였다. 첫 소절은 손발이 오그라드는 수준이 아니라 뇌를 순식간에 마비시키는 충격을 준다. '공항의 문이 열리고.. 따뜻한 햇살이 나를 맞는다. 이 햇살은 내가 그렇게 그리던.. 봉사활동을 무사히 마치고 나를 아늑하게 맞아주는 대한민국의 햇살이다. 수백번 더 상상했던 일들.. 더보기 당신의 나라는 어디입니까? 당신의 나라는 어디입니까? '황 나제즈다' 이름을 출석부에서 받았을 때의 기분은 지금도 몽롱하다. '황'은 한국의 성이요, '나제즈다'의 러시아 이름 사이에서 간극을 도저히 이해할 수도, 메울수도 없었다. 그녀의 이름을 보았을 때 느낄 수 없었던 고려인이라는 존재가 얼굴과 목소리에서 피어났다. '아, 고려인.' 우리나라가 우즈베키스탄을 떠올리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고려인이 아니겠는가. 고려인을 가르치지 않기를 바라고 바랬었는데 마지막 학기에 난 시험에 든 기분이었다. '황'과 '나제즈다'사이의 오랜 시간의 흐름을 넘어 한국어를 가르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2과부터 난감함에 봉착했다. 주제가 '나라'였기 때문이다. 고려인 학생을 만났을 시 가장 염려가 되는 수업이었다. 잔인하게도 상상이 현실이 되.. 더보기 아아, 밭 가는 김태희는 갔습니다 아아, 밭 가는 김태희는 갔습니다 이쯤에서 많은 이들은 참을성의 한계를 느낄 것이다. 이놈이 언제 우즈베키스탄의 '밭 가는 김태희' 존재 여부를 확인 시켜 줄지, 타는 목마름을 느낄 것이다. 진정들 하시라. 이제 그 질문에 답변을 드릴테니! '우즈베키스탄' 하면 우리의 머리 속에는 자동 검색어로서 '장모님의 나라'와 '밭 가는 김태희'가 생성된다. 그리고 그 존재 여부 및 신성한 간증을 기대한다. 그 결과를 '광고 뒤에 공개한다' 농담치면 이제 혼날 것 같아 말씀드린다. 밭 가는 김태희, 없다는 것이다. '정말'이라 묻는다면 정답은 아니지만 거의 확실하다고 하고 싶다. '증거'를 대라하시면, 이 답변을 위해 자타가 공인하는 우즈베키스탄 최고의 한국인 지역전문가*와 토론을 거쳐 나온 것이라 말씀드린다. '.. 더보기 두껍아 두껍아 새집말고 헌집이라도 두껍아 두껍아 새집말고 헌집이라도 해외봉사활동단원은 정말 돈을 하나도 받지 않을까. 한국국제협력단 봉사단원은 그렇지 않다. 비교적 안정적인(?) 활동비, 주거비, 정착지원금을 지원받는다. 활동비는 매달 지급받는 일종의 일비이다.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월별로 약 200~300달러 정도 받은 것으로 기억이 난다. (시간이 흐르긴 흘렀나보다. 이게 기억이 안 나다니!) 주거비는 월 300달러이다. 단원 시작 시 250달러였는데 상향 조정되었다. 이 두 개의 비용은 모두 현지에서 받게 된다. 수도 단원이었기 때문에 해외사무소에서 3개월마다 수령받으러 갔다. 정착지원금은 한국에 돌아왔을 때의 정착을 위해 매달 개인 통장으로 지급되는 돈을 말한다. 2010년 당시 월 40만원이었는데 2011년부터 월 50만.. 더보기 태권무라니! 태권무라니! 우즈베키스탄에 온 2월말부터 약 2개월간 진행된 현지적응훈련의 끝은 발단식이었다. 일종의 졸업식이자, 이제 본격적으로 봉사활동지에 파견되어 나름의 목표를 펼치는 다짐식이다. 그런데 우리 동기들은 이 발단식 준비를 무려 국내교육원 시절부터 계획을 하였다는 놀라운 사실! 교육원 시절, 나름 험악한 외모 덕분에 기수 사이에서 반항아로 분류되었던 나에게 여자 국장(즉, 반장)은 강력한 어조로 말하였다. 우리 기수는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문화공연단 활동을 할 것이고, 한국문화공연단 활동은 태권무 공연이 될 것이니, 그 태권무 공연의 처음 시작을 이 발단식에서 하겠다는 것이었다. 농담인 줄 알았다. 김건모 노래처럼 농담처럼 진담인 듯 건냈다는 사실을 곧 알 수 있었다. 당시 한국국제협력단 코이카 봉사활동.. 더보기 베기여, 잘 있거라 베기여, 잘 있거라 2달 동안의 현지적응훈련 기간 동안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우즈벡 가정에서 2주 지내는 OJT다. 이것은 의미가 상당하다. 첫째, 실제 우즈베키스탄의 가정집에 머물면서 그들의 생활을 몸소 느끼는 체험을 하게 된다. 향신료가 가득한 현지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 단원들에게는 시작전부터 걱정이 앞선다. 둘째, OJT는 자신의 파견지에서 실시되기 때문에, 장차 활동하게 될 기관을 처음으로 보게 가보게 된다. 앞으로 가르칠제자들을 만나게 되고, 몸풀이 차원에서 일부 단원은 시범 강의도 해본다. 또한 자기 기관의 선임 단원, 또는 같은 지역에 먼저 적응을 하고 있는 선임 단원을 처음으로 만나게 된다. 특히 지방단원들은 이 시기에 직접 자기가 살게 될 곳을 골라야 나중에 편하다. 셋째, 동기 단원들.. 더보기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