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나라는 어디입니까?
'황 나제즈다' 이름을 출석부에서 받았을 때의 기분은 지금도 몽롱하다. '황'은 한국의 성이요, '나제즈다'의 러시아 이름 사이에서 간극을 도저히 이해할 수도, 메울수도 없었다. 그녀의 이름을 보았을 때 느낄 수 없었던 고려인이라는 존재가 얼굴과 목소리에서 피어났다. '아, 고려인.' 우리나라가 우즈베키스탄을 떠올리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고려인이 아니겠는가. 고려인을 가르치지 않기를 바라고 바랬었는데 마지막 학기에 난 시험에 든 기분이었다. '황'과 '나제즈다'사이의 오랜 시간의 흐름을 넘어 한국어를 가르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2과부터 난감함에 봉착했다. 주제가 '나라'였기 때문이다. 고려인 학생을 만났을 시 가장 염려가 되는 수업이었다. 잔인하게도 상상이 현실이 되었다. 수업 목표를 적는 손에 과하게 힘이 들어갔는지 분필이 계속 뿌러졌고, 학생들을 웃었다. 주제가 '나라'라고 했을 때 나제즈다는 무슨 말인지 모르는 눈치였다. 하기사 그녀에게서 한국인의 모습은 오로지 외형 밖에 없었다. 러시아어를 하였고 옷차림 또한 러시아인에 가까웠다. 아니다. 그녀는 러시아인이었다. 조심스럽게 그녀에게도 교과서의 내용을 물어봤다. '저..는.. 우즈베키스탄 사람..입니다.' 라는 메뉴얼 대로의 답변을 들었을 때, 어줍잖게 칭찬을 할 수 밖에 없었다.
'파리의 택시 운전사' 홍세화 씨는 자신의 자식들의 국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생각했었다고 한다. 자신의 아이들을 한국인이라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들은 파리에서 태어났다는 것과 더불어 그들의 사고는 프랑스어를 통한 프랑스적인 사유를 하기 때문이라 한다. 이를 고려인들에게도 같았다. 러시아어를 하고 러시아인의 사유를 하고 있는 그들에게 당신의 나라가 대한민국이라 할 수 있겠는가. 최소한 내 판단에 그들을 러시아인으로 보는 것이 더 가깝게 느껴졌다.
나제즈다도 자신의 조상은 대한민국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고 하였다. 그것이 다였다. 그녀는 그녀일 뿐이었다. 재외공관 담당자*의 말에 따르면, 우즈베키스탄의 고려인 비율도 1%가 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많은 세월이 지났다. 그 세월 속에서 고려인들에게 당신의 나라는 대한민국이 아닌 러시아 또는 우즈베키스탄이었다. 어디 이뿐이겠는가. 조선인들도 일본의 자이니치들도 똑같겠지. 다시 뿌리라는 것은 무엇인가 이것저것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그들에게 '당신의 나라는 어디입니까?'라 물었을 때 듣고 싶은 대답은 무엇이었는지 지금도 기억나지 않는다.
* 우리나라는 고려인들을 위해 입국 비자를 5년 정도 허용하고 있다고 한다. 고려인들의 꿈은 이 비자를 취득해 한국에서 일하고 돌아오는 것이라 하였다. 그것이 삶의 유일한 희망이 아니겠냐고 이곳의 재외공관 담당자는 이야기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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