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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ICA - 우즈벡(Oh! z Bek)/난 빨따리로 가련다

태권무라니!

 태권무라니!

 

 우즈베키스탄에 온 2월말부터 약 2개월간 진행된 현지적응훈련의 끝은 발단식이었다. 일종의 졸업식이자, 이제 본격적으로 봉사활동지에 파견되어 나름의 목표를 펼치는 다짐식이다. 그런데 우리 동기들은 이 발단식 준비를 무려 국내교육원 시절부터 계획을 하였다는 놀라운 사실! 교육원 시절, 나름 험악한 외모 덕분에 기수 사이에서 반항아로 분류되었던 나에게 여자 국장(즉, 반장)은 강력한 어조로 말하였다. 우리 기수는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문화공연단 활동을 할 것이고, 한국문화공연단 활동은 태권무 공연이 될 것이니, 그 태권무 공연의 처음 시작을 이 발단식에서 하겠다는 것이었다. 농담인 줄 알았다. 김건모 노래처럼 농담처럼 진담인 듯 건냈다는 사실을 곧 알 수 있었다.  

 

 당시 한국국제협력단 코이카 봉사활동 54기 중 우리 기수가 가장 젊었다. 최고 나이 28세, 최저 25세였다. 남자는 나를 포함해 나이가 가장 많았던 형 한명이었고, 나머지 6명은 모두 여자였다. 마음이 그런대로 통하니 죽이 곧 잘 맞았고, 타 국가 단워들의 부러움 대상이었다. 여기까지 태권무를 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어 보였으나 활동분야를 보면 암담했다. 태권도 단원은 여자1명, 나머지 7명이 모두 한국어단원이었다. 나와 형은 군대에서나 흉내내 본 태권도였건만, 여자들은 마냥 웃기만 할 뿐이었다. 그것도 태권도가 아닌 춤까지 춰야하는 태권무인데 다들 좋다고 난리였다. 출국 전에 우리는 서로의 짐 상태를 확인했다. 밥솥 등 다른 건 모르겠고 태권도 도복과 검은 띠 챙겼냐는 확인 안부였다.

 

 도복은 가져 왔으니, 어찌되었건 태권무 공연을 해야했다. 첫 공연날이자 베타 테스트를 발단식으로 정했으니 시간도 많지는 않았다. 태권도 단원이 쉬운 동작 중심으로 전체 안무를 짰다. 여기에 대학교 시절, 학교 응원단 출신인 국장이 가세를 하였다. 태권도 동작과 응원 동작을 결합하자는 것이었다. 음악 또한 응원곡으로 많이 쓰이는 김원준의 'show로 정했다. 전체 동작, 음악, 남자 2명과 여자 6명의 자리 위치가 정해졌다. 그런데 혹시나 하는 문제가 역시나 생겼다. 다들 태권무 동작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여자들은 아무리 봐도 엉성하였다. 이게 에어로빅을 하는 건지 태권도를 하는 건지 분간이 어려울 지경이니 서로들 스스로의 자괴감에 한숨만 쉬었다.

 

 대책이 필요하였다. 포기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루비콘 강은 아니더라도 중국의 그 넓은 대륙을 건너(비행기가 해줬지만) 여기에 왔다. 그렇다면 해야 했다. 그래서 만든 제도가 티타임이었다. 하루 2시간씩 연습을 한 뒤 차를 마시며 태권무 준비를 비롯한 서로의 이야기를 갖자고 하였다. 누구는 태권무를 잘 못해 미안하다고 울었다. 누구는 다른 사람들에게 오해가 있었다며 울었다. 기왕하는 거 우즈베키스탄 봉사단원들 사이에서 '전설'로 불릴 만큼 멋지게 해보자고 하였다. 언어를 배우고, 문화체험을 하고, 밥을 지어 먹고 난 후 쉴 시간인 저녁시간 짬을 내어 연습에 연습을 하였다. 어설퍼도 좋았고 개인시간이 없어도 좋아했다. 그렇게 태권무 공연을 준비하며 현지적응훈련의 마지막 대미인 태권무를 선보일 시간, 발단식이 다가왔다.

 

 발단식은 태권무를 위해 일부러 대학교 내 큰 강연장으로 해달라고 운영요원님께 요청했다. 발단식 순서는 어느 기수나 비슷하다. 그 동안 배운 각자의 언어대로 소회를 발표하고, 우즈벡이나 러시아어 노래 발표를 한다. 여기까지는 우리 선임들이 했던 것이었고, 우리만의 발단식은 태권무 공연부터였다. 김원준의 노래 시작 'show~, show~, show~' 가 끝나자마자 우리는 데칼코마니처럼 가운데를 중심으로 갈라져 태권도 안무를 시작하였다. 발차기와 기합 소리가 이어지고, 중간에는 태권도 단원의 격파 시험이 이어졌다. 끝 마무리는 나와 형의 허벅지 위로 국장이 올라가 양 국기를 펼치는 퍼포먼스로 끝맺었다. 해외사무소 소장님을 비롯, 선임 단원들의 격려가 끝이 없었고 우릴 2달 동안 지켜보았던 운영요원님을 감동해 눈물을 보이셨다. 이게 뭐라고 그렇게 그 동안 고생을 했냐는 말씀과 함께 말이다. 우리 스스로도 대견하였고, 자랑스러웠다. 봉사활동 시작 전 좋은 출발을 알렸다.

 

 그 뒤, 우즈베키스탄 최초의 한국문화축제 및 동부지역 캠프에서  초청이 되어 이 태권무 공연을 선보였다. 한국문화공연단의 활동은 이루지 못했지만, 그 일환으로 태권무 공연 활동을 하였으니 나름 우리 기수의 목표는 이뤘다. 국내 교육원 때 , 우리가 만든 구호는 '우즈벡의 힘'이었다. 구호 대로, 생각대로 이룬 것이 있어 뿌듯하다. 아울러 태권무를 준비하는 2달의 기록과 공연 기록은 모두 영상으로 갖고 있으니 영원한 삶의 선물을 받은 것이라 지금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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