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일기를 읽은 소감
2년 해외 봉사활동을 떠나기 딱 하루 전날 밤, 난 블로그에 봉사활동을 마치고 돌아온 가상의 일기를 썼다. 봉사단이 생긴지 초창기에 해외봉사활동의 길을 열었던 선배가 한 말이 마음에 남았기 때문이다. '봉사활동을 가기 전에 하고 싶은 것을 모두 꿈꾸세요. 그러면 다 이루어서 돌아올겁니다.' 이 말에 이끌려 난 2년 후 입국 모습을 미래일기 형식으로 남겼다. 제목은 '더없이 행복했던 2년의 시간들, 봉사활동을 마치고'였다.
첫 소절은 손발이 오그라드는 수준이 아니라 뇌를 순식간에 마비시키는 충격을 준다. '공항의 문이 열리고.. 따뜻한 햇살이 나를 맞는다. 이 햇살은 내가 그렇게 그리던.. 봉사활동을 무사히 마치고 나를 아늑하게 맞아주는 대한민국의 햇살이다. 수백번 더 상상했던 일들이 이처럼 일어나니.. 무엇보다도 무사히 2년동안의 봉사활동을 마치고 돌아올 수 있게 된 것에 이루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기쁘다. 감사하다.' 아 내가 이런 글을 썼다니 믿기지 않을 뿐이다.
하고 싶은 일을 모두 적었다. 최고의 한국어 선생이었고, 러시아어를 열심히 배우고, 가져간 요리책의 절반 정도를 습득했으며, 심지어 국외여행으로 미국으로 갔다. 그중에 가장 소중한 것은 바로 함께 간 동기들을 인생의 친구들로 만들었던 것이라 적었다. 배경음악으로 이바디의 '끝나지 않는 이야기'를 설정해 놓았다. 지금 읽으니 기분이 삼삼하다. 쓸쓸하기도 하고 허전하기도 하고 내 글쓰기 능력으로는 어떻게 표현할 수 없다. 정말 길게도 썼으며 별의별 바람들을 주정뱅이처럼 늘어놓았다. 결국 이 적은 것을 모두 이루고 귀국했다고 써 놓았다. 그래서 많은 이들의 반대도 있었기만 결론은 더없이 행복했던 해외봉사활동의 시간이었다고 끝맺었다.
귀국 후 몇번 이 글을 읽었었다. 미래 일기를 썼을 때 정말 다 이룰 것 같았지만 실상 별로 이룬 것이 없었다. 팔은 안으로 굽힌 뒤 점수를 줘도 40점에 미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런데 신기한 점이 한 가지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툭한번 읽고, 더 시간이 지나 툭한번 더 읽을 때마다 이 점수가 높아진다는 것이었다. 귀국한지 얼마 안 되 이 글을 읽었을 때는 스스로에게 실망감도 컸다. 지금 읽어보니 생각하는 관점에 따라 '뭐 이 정도면 이룬 것이라 할 수 있지 않나'란 생각이 든다. 자기합리화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미래 일기를 종종 쓰고자 한다. 재미도 있고 밑져야 글쓰기이지 않을까 한다. 글쓰기는 자기충족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 효과가 있다고 한다. 자기충족적 예언은 바라고 기대하는 것이 실제 현실에서 충족되는 현상이다. 미국 사회학자 윌리엄 토머스가 주장을 했다는데, 바로 사람들이 어떤 상황을 마음속에서 '실제'라고 결정해버리면, 결국 실제가 된다는 것이다. 말과 글이 씨가 될 터니이 이루고 싶은 일은 눙치며 가상 미래일기를 쓰겠다. 소이현 스타일과 결혼 생활부터 시작해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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