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좁디 좁은 옥탑방에서 사법고시 합격의 꿈을 함께 키우던 철수와 영식은 운이 좋게도 대한민국 최초의 슈퍼볼에 당첨이 되었다. 그것도 우정의 표시로 각자가 같은 번호를 하나씩 가져서, 그 상금액이 무려 500억에 육박을 했고, 이제는 고생 끝 행복의 시작이라 둘은 서로 부둥켜 안고서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호사다마를 경계하랬던가. 오월이지만 유난히 추웠던 이상한 날이었다. 운명의 장난은 이들 청년에게 너무나 가혹한 장난을 친다. 목돈을 찾으러 간다면 추레한 차림은 의심을 받는 다는 네이버 지식인의 지도에 따라, 그들은 생애 처음으로 모든 돈을 모아서 백화점에 양복을 샀다. 어차피 곧 부자가 되기 때문에 돈은 아깝지 않았다. 서로가 양복을 입은 모습에 어색하며 놀리던 순간, 백화점이 크게 흔들리더니 건물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두 사림이 눈을 뜨자 빛이라고는 거의 들지 않는 어두컴컴한 블랙홀에 갖힌 느낌이었다.
서로가 이름을 부르면서 몸 상태를 살폈지만, 좁은 공간에서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철수와는 다르게 영식은 건물 잔해에 심하게 깔려 큰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몸이 비교적 자유로운 철수는 다친 상태에 마른 기침과 목마름을 호소하는 영식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나갔는지 알 수도 없었다. 그들의 어린이집 꽃달래반의 영희를 두고 함께 이르렁 거리던 순간부터 대학의 합격 순간, 그간 서로에게 비밀로 했던 일들까지 키득거리며 버텼지만 서로가 한계에 왔음을 느끼고 있었다.
죽음이 임박했음을 느낀 건 아무래도 영식이 먼저였다. 그는 양복주머니에서 슈퍼볼 당첨표를 꺼내면서 철수를 불렀다. 볼 수 없지만 철수도 무거운 몸을 이끌고 다나오고 있음을 느끼면서, 이 당첨표로 해줬으면 하는 일들을 부탁 했다. 철수는 어둠 속에서도 영식의 얼굴 방향을 향해 거절을 말했지만 영식은 완고했다. 할 수 없이 철수가 겨우겨우 영식이 건넨 당첨표의 맨 끝부분을 검지와 집게 손가락으로 잡은 순간이었다. 벽 한켠에서 구조대의 살아 있는 사람 없냐는 다급한 외침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뭔가 점점 건물 잔해를 파내면서 이제는 살 수 있다는 희망이 부풀어 오를 순간이었다.
영식은 순간 자신의 당첨표를 당기는 철수의 힘이 강해진 것을 알았다. 영식도 없는 힘을 쥐어 짜서 자신의 당첨표를 당겼다. 당첨표는 두사람의 장력에 찢겨질 것만 같았다. 영식이 안간힘을 쓰는 사이, 자신도 모르게 철수가 곁에 와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곧 그의 손이 자신의 코와 입을 막았다. 철수는 영식의 몫까지 잘 살겠다고 하면서 구조대가 오기 전까지 모든 힘을 쏟아 그를 질식시켰다. 영식은 허망함과 함께 스르르 오른손의 당첨표를 놓을 수 밖에 없었고, 철수는 그것을 바로 챙기며 구조대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러고 또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이 흘렀다.
"자 이제 천천히 그곳을 나옵니다. 레드썬"
철수는 희미하게 눈을 떴다. 편안한 안마 의자에 누워 있었는데 곧 누군가가 오더니 자신의 두 손에 수갑을 채우며 말했다. 잠에서 막 깨서 정확히 듣지는 못했지만 자신을 경찰이라 말한 사람이 철수를 살인 교사의 혐의로 체포한다고 하면서 묵비권 어쩌고라 한 거 같았다. 그러면서 부하에게 명령을 하는 것 같았는데, 취조실 유리창 밖에 보고 있던 유가족들은 이제 내보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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