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시킨의 죽음
프랑스 귀족의 아들로 7월 혁명 뒤 출국, 네덜란드 공사의 양자로 신분을 세탁, 러시아에 굴러들어 근위대 소위가 된 제비족 조르주 단테스와 콘차로바 사이의 풍문은 푸시킨을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다.
페테르부르크의 검은 강 '초르나야 레치카'에서 결투(1837.1.27.)로 치명상을 입고, 이틀 뒤 시인은 차르의 감시망을 벗어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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