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워야 덜 외롭다
김정운 교수(이제는 화가라 해야하나)의 글을 좋아한다. 재미있고 쉽기 때문이다. 그의 책을 모두 보았던 것 같다. 평소 책 구매의 절반은 책 제목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는 이를 간파한 영리한 작가다. '노는 만큼 성공한다.','나는 아내와의 결혼의 후회한다','에디톨로지' 등 제목에 끌려 작가를 알게 되었다. 오랜 시간은 아니지만, 작가의 책을 꾸준히 읽으니 그가 이야기하는 삶의 에피소드, 친구들, 아들들의 이야기도 세월이 묻어있다. 어린 초등학교 시절의 아들들 이야기가 이제는 군복무를 마친 에피소드가 되었을 때, 나도 그만큼 나이를 먹었다는 것에 놀라기도 한다. 작년 연말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작가 이름을 검색해 봤다. 새 책을 출간했다. 제목도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였다. 이 책을 2015년에서 2016년으로 넘어온 새해 첫날 새벽에 보았다. 그 새벽에 볼 수 있는, 너무도 어울리는 책이었다. 작가에게 고마웠다.
지행합일은 어렵지만 언행일치는 해야하듯, 작가 또한 책 제목에 맞는 '외로운' 시간을 보냈다. '외로운' 시간을 보냈기에 이런 책도 나온 것이 맞을 수도 있겠지만. 드디어 '정년이 보장된' 교수직을 때려치고 일본으로 가서 그림 공부를 하였단다. 뭔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는 내면에 감응한 결과였다. 일본의 단과대학을 다니며, 그림을 그리며, 홀로 지내는 그 외롭던 시간이 정작 가장 소중한 시간이었단다. 외로움을 견디니 옆이 보이고,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고, 오히려 외롭지 않았다고 한다. 이를 외로움의 역설로 표현하였다. 그래서 맹목주의적으로 무엇을 쫓으려 하지 말고, 외로운 시간을 견디며 '나'를 찾으라 한다. 하고 싶은 것을 찾고 그것을 따르면서 말이다.
맞는 말이다. 주말에 혼자 있었다고 하면 다들 안타깝게 '연애' 좀 해라 한다. 속으로 '소개팅' 시켜줄 거 아니면 그런 말 마시라 한다. 혼자 있는 게 문제인 것 같아 여러 모임에도 나가보고 강좌도 듣고 이것저것 한다. 나만 이렇지는 않겠지. 외롭지 않으려 사람들은 참 고생한다. 주말마저 바쁘게 살고, 평일에는 경쟁하고, 자기를 채찍질 하며 자기 '계발'이 아닌 자기 '개발'을 한다. 그러다 한순간 '훅' 간다는 작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의문도 들었다. 혼자 있어도 외롭고 사람들과 있어도 외롭기는 똑같기 때문이다. 관심있는 '밴드'에 초대가 되어 회원이 된다 한들 근본적인 외로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부부가 되고 가족이 생겨도 똑같이 외로움은 삶과 함께 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그렇다면, 관계의 외로움은 문제가 아닌 것이다. 아무거나 남이 던져 놓은 가치를 쫓는 것이 안타까운 것이다. 그것을 탈피하여 자신의 길을 찾는 방법, 정신적인 '외로움'이라 말한다.
어떤 주말이었다. 내가 들은 유일한 목소리는 '백미 취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라는 밥솥의 알람 소리였고, 내가 받은 유일한 카카오톡 메시지는 유니세프에서 온 후원 관련 메시지였다. 이건 아니다 싶었다. 이제는 관계의 외로움 보다는 정신의 궁핍함을 경계해야겠다고 다짐한다. 목적없이, 정처없이 그냥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니라, 이 '외로운'시간에 생각을 갖고 앞날을 설계하고, 행동하는데 사용하련다. 그러면 정말 재미있을 것 같다. 정초에 혼자로서의 반대급부로 어학, 운동, 업무지식 계발 등을 통하여 보상 받자고 마음의 칼을 갈지 않았었는가. 격하게 외로옴으로써 덜 외로워지리라.
다만, 양심적으로 솔직해야 하기에 덧붙인다. 내가 지금 연애하면 이 글 쓰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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