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역국 프로젝트
'... 음 ... 다음 차례는 조랭이떡만 하게 자른 가래떡을 넣고, 뜸을 들인 뒤 멸치 액젓과 국간장으로 간을 하라 하였다. 조랭이가 뭔지 잘 몰라 그냥 설날에 집에서 공수한 가래떡을 4개 넣었다. 그리고 이 미역국을 위해 생전 처음 사 본 멸치 액젓을 한 숟가락 넣었다. 국간장을 넣고 5분여 끓였다. 뽀얗게 아기 침 같은 국물이 베어나왔다. 글쓴이는 미국역이 단순한 음식이지만 이렇게 단순한 재료로 만든 음식일수록 맛을 내기는 더욱 어렵다고 하였다. 이런 음식일수록 하나의 공정이라도 빼먹거나 서툴렀다가는 금세 태가 나고 맛없는 음식이 된다고 하였다. 떨리는 가슴으로 국물 한 숟가락 입에 넣었다. 생각보다 꾀 괜찮았다. 아침에 더 끓이면 더 깊은 맛이 베어나올 것 같았다. 아침 일찍 미역국 인증사진 찍어 어머니께 보내면, 완벽한 생일의 시작이...'
이론상으론 이렇게 진행되었어야 했다. 생일을 맞아 저 미역국을 끓이기 위해 월요일부터 얼마나 준비했던가. 모든 것은 마음의 준비가 중요하기에 물고기 그림의 앞치마를 사고, 미역을 골라 사고, 물에 담가 놓고, 쓸 일 없을 것 같았지만 글쓴이가 하란대로 해야하니 멸치 액젓도 샀다. 끓이면 뭐하나, 아침에 밥을 먹어야지. 그래서 아침에 꼭 일어나서 미역국을 먹고자 자명종까지 샀다. 그런데 미역국을 끓이려 마음먹었던 화요일의 끝머리에 난 침대에서 자고 말았다. 항상 '잠깐만' 누워 있어야지 하면 그 상태로 아침을 맞는다. 오늘 아침도 믿기 싫은 하루를 시작하였다. 지금쯤 새벽에 끓인 아기 침 같은 뽀안 미역국을 호호 불러 먹고 있어야 했는데 출근이나 허겁지겁 준비해야했다. 그렇게 미역국 프로젝트는 허망하게 시작도 못했다.
지난 금요일, 어머니는 서울에 일찍 올라가려는 내 모습에 섭섭함을 그대로 내보이셨다. 토요일에 올라가면 생일을 대신해 미역국을 끓여주려 했다는 것이다. 나를 낳은 날에 미역국을 먹은건 어머니인데, 왜 내가 꼭 미역국을 먹어야 하는지 장난삼아 물었다. 어머니는 그냥 웃어 보이셨다. 생일날 미역국도 못 끓여준다는 마음이 쓰이지 않도록, 오늘은 반드시 내가 미역국을 끓였어야했다. 미역국을 끓이기 위해 내가 본 글에서(요리책이 아니다) 작가는 생일날 미역국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어미는 '제 밥 찾아 먹을 만큼' 키우는 것으로 노력했던 세월을 기억하고, 자식은 그것에 대해 미안하거나 감사해하는 날이 생일의 의미라 하였다. 그 증거가 바로 미역국이라 하였다.
게으른 천성에 미역국 프로젝트는 다음 기회로 넘겨야 했다. 월요일부터 몸집을 한없이 키운 저 미역들은 어찌할꼬.
'연필의 키가 작아질수록 > 생각을 모음과 자음의 만남으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외로워야 덜 외롭다_김정운의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2) | 2016.05.14 |
---|---|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야구를 하기를 (0) | 2016.05.12 |
세계시민과 후원자 (0) | 2016.05.10 |
100일 글쓰기 작성 목록 (0) | 2016.05.08 |
이모티콘 고르기 (0) | 2016.05.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