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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의 키가 작아질수록/생각을 모음과 자음의 만남으로

파리지옥으로 뛰쳐들기

파리지옥으로 뛰쳐들기


 

 눈을 뜨기 싫다. 분명 자책으로 이 아침을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눈을 슬며시 뜬다. 밤새 켜놓은 형광등이 달아오른 듯, 마치 한낯 오후의 태양처럼 나를 내리 쬔다. 별일 없기를 바라며 휴대폰을 확인한다. 간밤에 알람도 맞춰 놓지 않았다. 하기야 알람이나 맞출 생각이나 했으면 이 사태를 맞이하지도 않았다. 다행이 늦은 시간은 아니다. '5분 더'를 약속하며 자는 것도 아닌, 일어난 것도 아닌 가수면 상태를 청한다. 3분이 지났을 무렵 그냥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간다. 화면 보호기만 조용히 움직이는 노트북을 황급히 끄고, 널브러진 가방과 양발을 보며 간밤 기억을 되돌린다.

 


 집에 들어 온다. 컴퓨터를 키고 음악을 일단 튼다. 글을 쓰려고 한다. '글' 위치에 인터넷, 독서, 설거지 등등을 대신 넣을 수도 있다. 피곤하다는 생각이 든다. 잠깐 발을 침대로 뻗는다. 쭉 펴진 다리를 통하여 전신의 피로가 풀리려는 느낌이다. 그 순간이다. 침대는 파리를 꼬시는 식물, 파리지옥으로 변신을 한다. 쭉 뻗은 다리를 침대에 몇 번 튕긴다. 파리지옥의 입을 건드리는 파리가 된다. '더 깊숙이 들어갈까' 파리 한 마리의 고민이 시작된다. '딱 5분만 누워있어'라고 파리는 파리지옥의 꼬임에 넘어간다. 잠깐 눈을 붙이려는 순간, 컴퓨터의 음악소리는 멀어지고 눈은 감긴다. 마치 파리지옥의 입이 닫히듯 말이다. 눈을 뜨면 그렇게 설익은 아침을 맞는다.

 


 일주일에 절반은 이렇게 아침을 맞는다. 이런 습관을 못 고치는 게 신기한 게 아니라, 이런 습관으로 후회하며 계속 살아가는 게 신기하다. 처칠이 그랬던가. 당신의 침대가 아무리 포근하고 따뜻해도, 당신은 거기서 빠져나와야 한다고 말이다. 이제 나의 1인용 작은 침대를 파리지옥으로 정의하련다. 고된 죽노동의 결과로 얻은 자유시간을 글쓰기, 독서, 인터넷 돌아다니기 등 그 무엇이라도 보상받은 다음 당당히 파리지옥으로 뛰쳐들 것이다. 아, 요즘들어 중점적으로 습관을 들이고 있는 설거지 및 그릇 정리도 빠뜨리면 안 되겠다.


 오늘부터 할 거 다 하고, 휴대폰의 알람을 맞추고, 아침에 입을 셔츠를 고르고 일과를 완전히 마무리 짓는다. 그리고 나는 한 마리 지친 파리가 되어 파리지옥에 앉는다. 파리지옥은 슬며시, 천천히 입읍 닫기 시작한다. 난 이미 끈끈이액으로 인해 도망칠 수 없다. 몸은 점점 무거워지고, 파리지옥의 입이 닫히는 것에 따라 내 눈도 스스르 감길 것이다. 이 어둠이 과히 나쁘지 않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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