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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의 키가 작아질수록/생각을 모음과 자음의 만남으로

책을 읽기 싫은 이 순간에

 책을 읽기 싫은 이 순간에

 

 책장의 책들을 보고 놀랐다. 올해 사 놓고 안 읽은 책이 지금까지 7권이나 되었다. 일주일에 최소 1권, 한달에 최소 2권 정도 읽는 식으로 내가 책을 꾸준히 읽는 사람은 아니다. 또한 많은 책을 다독하는 스타일도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 사 놓은 책을 이렇게까지 쌓아두지는 않았다. . 올해 초, 유시민 작가 특강을 듣고 더이상 책의 개수에 목숨 걸지 않기로 했다. 천천히 즐기는 독서를 하자고 했건만, 지금까지 중간 결과는 책은 장식하는 데 낭비하고 있는 것이었다.

 

 시간이 없어서일까. 시간은 언제나 없었다. 언제는 시간 있어서 책 본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단, 작년에는 독서토론 수업 때문에 1주일에 책 한 권은 읽었다. 수업 끝나고는 도로묵이 되었지만 말이다. 책 읽을 환경은 좋아졌다. 나름 자취방을 옮기면서 방의 구조를 책 읽기에 최적화 시켰다고 생각한다. 책상과 침대를 붙여 놓아서 책상에서 책을 보다가 힘들면 침대로 가면 되었다. 스탠드(대한민국에서 최고가에 속하는)의 방향만 침대로 돌려주면 은은한 조명 아래서 책을 볼 수 있게 한 것이다. 물론 이론을 실천한 적은 거의 없다. 잠 자기에 가장 최고의 환경만 구축해 놓은 결과를 확인할 뿐이다.

 

 답답한 마음에 요즘 즐겨보고 있는 동영상 '성장문답'을 검색하였다. 딱 있었다. 책을 사두기만 하고 보지는 않는 문의가 있었다. 나 같은 사람이 또 있다는 사실, 그것도 내 마음을 그대로 느끼고 있다는 사람이 있어서 마음이 놓였다. 과연 전문가는 어떤 대답을 할까, 어떤 비책을 말할까 기대가 높았다. 역시 전문가의 답은 놀라웠다. 읽기 싫으면 포기하라는 것이었다. '이게 아닌데' 싶을 때, 추가 부연 설명이 이어졌다. 그런 책은 꼭 안 봐도 된다는 것이었다. 책을 통하여 지식을 팽창할 수 있다는 논리(똑똑해 질 것이라는 환상)는 인쇄술이 발달한 시점(약 19세기)에서 생겨났다고 말했다. 인류는 책 보기 이전에도 충분히 지적 활동을 했다는 말까지 들었을 때, 가치관의 혼란까지 일어났다.

 

 아무래도 경험 속에서 답을 찾아야 했다. 역으로 가장 책을 보고 싶었을 때를 찾아보니 군대 시절이었다. 바야흐로 선진 병영 문화가 오기전에 구시대 폐습은 모두 경험했던 군대 생활이었다. 그 중 하나가 이등병 및 일병은 책을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일병은 6개월 기간 중 4개월이 되었을 때 책을 볼 수 있게 하였다. 이등병과 일병이 책 읽을 시간이나 있겠냐는 것이었다. 맞는 말이긴 했다. 선임병들 전투화 닦는 것까지 정말 해야 할 일들이 많기는 했다. 이웃 부대로 파견을 나간 일병 4개월, 군대에 들어간지 10개월만에 처음 본 책이 '좋은 생각'이었다. 그 감격이란 지금도 생생하다.

 

 그랬다. '좋은 생각' 몇 쪽이라도 화장실에서 봤던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은 비교가 불가할 정도로 행복한 시절이다. 이보다 좋은 동기부여는 없는 것 같다. '더이상 책을 장식품으로 사용하지는 말아야지' 하며 책에 손을 뻗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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