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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의 키가 작아질수록/생각을 모음과 자음의 만남으로

생리대를 후원하다

 생리대를 후원하다

 

 처음으로 '생리'라는 단어를 접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다. 남자 담임선생님이 이 단어, 2음절로 이뤄진 말을 꺼냈을 때 여자들은 소리를 질렀고, 남자애들은 하나 같이 어리둥절하였다. 초등학생으로서, 그것은 (당대의 어린이 만화 최고봉이었던) 피구왕 통키 '필살기'가 불꽃마크 5개를 땅바닥에 그리는 황당함과 같았다. 친구에, 친구에 물어물어 그 답을 알고 있는 사람을 찾았다. 중학교에 다니는 누나가 있던 다른 반 애였다. 합동체육 시간에 다른 반 그 친구에게 가서 조용히 물어봤다. 지금 생각하면 참 말도 안 되는 답변이었다. 그렇게 성교육 아닌 성교육을 받고 자랐으니 남녀 존재로서의 본질적인 차이에 대해 고민하고 이해할 수 있던 시간은 거의 없던 것 같다.

 

 처음으로 '생리대'라는 물건을 접한 것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였던 대학생 20살이었다. 점장님은 술이나 생리대를 팔게 되면 꼭 검은 봉지에 넣어서 주라고 하였다. 심야 시간, 얼굴 표정이 좋지 않았던 여자 손님이 생리대를 계산하려 하였다. 바코드를 찍고 돈을 받고 검은 봉지를 뜯을 때, 딴 곳을 보고 있던 그 여자 손님은 봉투를 검은 색으로 달라고 하였다. 내 손을 보니 '아' 라는 짧은 한마디와 함께 황급히 매점을 나갔던 기억만 있다. 그 외 특별히 '생리'나 '생리대'에 관하여 생각해 볼 사건은 없었다. 성인이 된 지금에도 왠지 이야기하고 껄끄럽고 부끄럽다. 마치 부모님과 같이 영화를 보러 갔을 때, 사전 조사에서 발각되지 않았던 주인공들의 베드신을 봤을 때 낯뜨거움과 같다. 아직도.

 

 이렇게 두 단어를 꺼낸 것은, 지금 내가 '뭣이 중헌지'도 모르고 생리대를 기부했기 때문이다. 요즘들어 생각보다는 행동이 한 발 짝 앞서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지 못하다. 생리대 후원도 그랬다. 며칠 전, 생리대가 없어 학교를 못가는 학생이 우리나라에 있다는 소식에 아연실색하였다. 입사 스펙이 너무 높아, 거들떠 보지도 않았던 유한킴벌리 홈페이지를 찾아 들어갔다. '이런 사실을 그 기업은 알까','사회적 기업이 대세니까 유사 사업이 있지 않을까','없다면 게시판에 글이라도 남길까','그렇다면 어떤 글을 남겨야 할까' 등등 생각이 떠올랐지만 결국 내가 원하는 부분은 찾지 못했다. 그러다 포털 사이트의 생리대 후원 이야기가 있어 돈을 보내기에 이르렀다.

 

 후원사의 이력도 챙겨보지 않았다. 잘 쓰이리라는 단순한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저소득층 여학생들이 겪는 문제에 난 달랑 돈 몇 푼으로서 자기합리화를 위한 수단을 얻으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내 후원의 동기는 순금(純金)일까, 내실은 없고 겉만 있어 보이는 도금(鍍金)에 불과할까. 초등학교 5학년 때, 왜 담임선생님은 이유도 없이 운동장을 남자아이들만 뛰게 했을까. 여자애들만이 보았다는 그 비디오를 같이 보았다면 이런 고민은 덜 해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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