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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의 키가 작아질수록/생각을 모음과 자음의 만남으로

조조 K

  K와 다시 만난 건 5년 전 서울대 고시촌에서다. 출근을 위해 5515 버스정류장에 다다랐을 무렵, 마치 계주 경기에서 선임 주자에게 바톤을 달라는 후임 주자의 다급한 손짓이 나에게 뻗어왔다. 누군가 택시를 잡나 싶었다. 차도 쪽으로 몸을 살짝 빼어 태그를 피했다. 순간, 내 이름 세 글자가 들려와 돌아서니 K가 있었다. 짧지만 살짝 웨이브를 준 간결한 머리 스타일, 까만 피부색에 동그란 눈과 입술은 여전히 배우 주진모를 닮아 있었다. 가을 초입에 맞춰 입은 간절기 남색 코드는 통일된 검은 셔츠와 바지, 그루브 없는 황색의 구두와 잘 어울렸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눈짓으로 돌아드니, 패션 감각은 여전했으나 젊음은 간데 없었다. 기쁨과 당황함도 잠시, 내가 타야할 버스가 도착했다. 우정과 회사 사이를 가늠할 수 없어 하자, K는 명함을 건네주며 버스에 어서 타라했다. , 연락하라는 말만을 마지막 손님으로 태우고 버스 앞문이 닫혔다. 꿈에서나 그리던 일이 일어난 설렘과 동시에, 그것이 두 번째 여자 친구가 아닌 K임은 조금 아쉬웠다.

 

  우리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동창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나의 절친이자 경쟁자였다. 2학년부터 4학년까지는 같은 반에서 3등과 4등을 다퉜다. 5학년 때는 전교 어린이 부회장으로, 이것도 아쉬웠는지 6학년 때는 최후의 전교 어린이 회장을 놓고 싸웠다. 중학교를 같은 반에서 시작하게 되었을 때, 이제 2차 세계대전의 서막이 올라간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시험이 거듭될수록 K의 성적이 내가 경계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말은 힘내라 하였지만 마음은 기뻤다. 전교 석차에 내 이름과 K 사이의 거리가 벌어질수록, 내 경계심도 K라는 존재에 둔해지기 시작했다. 그런 시간들이 먼지처럼 살포시 쌓이기 시작하니, 청소의 고생보다도 애써 외면하는 길을 선택했다. 교실 복도에서 마주치면 비켜갈 수 없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것 같았고, 데면데면 인사하고 스쳐가는 사이가 되었다. 전공은 다르지만 같은 대학교까지 합격을 하였을 때는 덤덤히 받아들였다. 1학기의 글쓰기 교양 수업이 똑같아 몇 번은 마주쳤다. 그러다 이상하게 2학기부터는 볼 수가 없었다. 이듬해, 들려오는 풍문에는 반수에 성공하여 서울 소재 대학교에 입학을 하였다 했다. K를 보지 못한 시간이 길어졌다. 현금 인출 시 수수료 면제 횟수를 다 소진한 것처럼, 우연을 가장한 만남의 기회를 다 사용한 것 같았다.

 

  K가 가끔 생각날 때마다 밀린 가계부를 정리하듯, 우리 관계를 계산해 봤는데 나와 K는 너무도 다른 사람이었다. 삼국지의 인물로 따지면 난 유비, K는 조조였다. 초등학교 입학부터 K는 출신이 좋았다. 삼보아파트에 살며 병설유치원 졸업하여 친구들도 많고 인기도 좋았다. 매사에 앞장서는 타입이었다. 그래서 반장과 같이 책임과 동시에 권한이 주어지는 일들을 좋아했다. 난 주택 단지에 살며 읍내의 학원을 다녔다가 입학을 하였기에 아는 친구가 없었다. 누군가 앞장 서 나가면 뒤를 따르거나 돕는 역할이었다. 난 될 수 있으면 책임을 피하고 또 피했다. K는 본인 중심적이고, 원하는 것을 위해서 철저히 실리를 취했다. 이에, 조조 휘하에 장수와 책사들이 화려했듯이, K의 점심밥 친구들은 뷔페처럼 다양하고 매번 바뀌었다. 난 도원결의를 맺는 소수의 친구들과만 점심을 먹었다. 구내식당처럼 단조로웠다.

 

  20대 후반까지 간간히 접하게 된 K의 소식은 놀랍기도 하고 얄밉기도 하였다. K는 바야흐로 자신의 인생이란 삼국지를 통일하고자 차곡차곡 뜻을 펼치는 것 같았다. 서울로 대학을 간 후에 전공을 살려 행정고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누구는 거듭된 실패로 25살에 군대에 갔다고 했고, 누구는 행정고시는 접고서 정치학과로 전과를 했다고 했다. 그 후 외무고시를 다시 준비하다가 이제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공기업 입사를 준비한다 했다. 적벽대전에서 쫄딱 망했던 조조처럼, 시험에 합격했다는 이야기는 없어서 다행이었다. 다만, 그에 비해 난 이룬 것도, 준비해 나가는 것도 없었다. 유비는 전국재패는 요원하고 허벅지의 살만 쪄가는 현실을 한탄했었는데 딱 내 모습이었다. 서른이 넘어 회사에 입사한 후 어느 날, K는 약 10년 동안의 공부를 접고 급한 대로 공공기관에 입사를 하였다 했다. 어머니가 목욕탕에서 만난 K의 어머니로부터 전해들은 정보였다.

 

  30대에 다시 해후한 K는 그대로였다. 오히려 각자의 개성과 철학이 견고해져서 매번 건곤일척의 논쟁이 오갔다. 시작은 항상 좋다. 살아온 지난 일들을 회상하다가 그런 시절이 다 있었다고 서로를 격려한다. 이후 고고도미사일 방어 체계 구축같은 정치 이야기로 넘어간다. 결론은 안 봐도 유튜브다. K는 나에게 빨갱이라 하고, 난 그를 수구꼴통이라 욕한다. 한번은 초등학교 동창 결혼식을 함께 가기로 했지만 갑자기 회사일이 생겼다고 해서 나만 간 일이 있었다. K가 유일하게 마시는 더치 맥주를 만들어 먹인 후, 결혼식 날 토익시험 봤냐고 추궁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친구의 결혼식도 중요하지만 내가 잘 되어 친구를 도와 줄 위치의 사람이 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이런 일도 있었다. 녀석이 다니던 독서실에 3개월 치 결재를 하고 자격시험 공부를 결심한 적이 있었다. 함께 공부해서 함께 잘 되자는 꼬임에 넘어갔던 것이었다. 2주후부터 K가 안 보였다. 알고 보니 한국어능력시험을 취득해서 독서실의 짐까지 뺐던 것이었다.

 

  '저만치' 란 단어가 나와 K의 거리를 나타내기에 적합한 것 같다. 이 거리를 굳이 좁힐 필요도 없고, 그 거리여서 좋은 것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K의 시선과 생각이 나와 다르고, 나를 놀라게 하고, 때로는 내게 화를 일으키지만, 그것 또한 내 삶의 태도에 좋은 자극을 주었다. K는 회사에 다니면서도 그가 원하던 공공기관 입사를 위해 공부를 계속했다. 나이 제한에 걸려 겨우 포기했다. 그런데 이제는 전문 자격증 취득을 위해 다시 독서실을 가고 있다. 해외 여행은 커녕 여권조차 없는 K를 놀려대고 있지만, 목표를 갖고 저돌적으로 돌진하는 모습이 마냥 부럽다. 내 결혼 후 못 만난다며 투덜대며, 곧 날을 잡자 하지만 우린 당일 날 1시간 전 약속이 아니면 만날 수 없음을 안다. 그렇지만 마냥 알겠다고 하고 그거면 됐다. 바둑판의 백돌과 흑돌은 불가근 불가원의 사이지만 그 둘이 어울러 바둑이라는 작은 우주를 만든다. 앞으로 나와 K가 함께 그려갈 바둑판의 작은 우주가 못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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