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퇴근길이었다. 아내의 카톡에는 지금 어디냐고 했고, 항상 그랬듯이 아주 단문으로 '퇴근길'이라 하였다. 그러자 이상하게 시리 먼저 도착한 집에서 뭘 할거냐고 집요하게 물어왔다. 집에 와서 보면 되잖냐, 빨래 해야 한다. 빨래 해줄거냐는 말에 내가 할꺼니 이제 그만 집에서 만나 이야기하자고 튕겨냈다.
집에 도착해서 빈둥거리며 유튜브나 보고 있는대도 또 아내의 카톡이 왔다. 집에서 뭐하냐는 것이었다. 빨래 막 돌렸다고 하자 빨래 돌리고 또 뭐할거냐 했다. 아무것도 안 하겠다 하니 정말 아무것도 하지 말라 했다. 집에 도착해서도 지금까지 뭐했냐고 물었고 시큰둥하게 카톡 내용대로 암것도 안했다고 했다.
아내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냐 하면서, 슬며시 "고스트 오브 쓰시마" 플스 게임 CD를 가방에서 꺼내 보였다. 순간, 아이패드로 보던 고스트 오브 쓰시마 구매 첫 영상 후기를 중지시켰다. 이게 왠 것이람. 오늘이 발매일인데 아내는 퇴근길에 용산역까지 거쳐서 이 게임 CD를 사 온 것이다. 나를 위해서.
입술은 이미 귀에 걸려있었고 심장은 벌렁거리는 동시에 아내에 대한 사랑이 샘 솟았다. 왜 사왔냐 싫은 척 물어보니, 내가 지난 주부터 이 게임 소개 영상을 보며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더랜다. 이 게임 CD를 사다주면 내가 행복할 것 같다고 해서 거금을 드려 선물을 해 준 것이었다.
이미 지난 주, 난 아내의 지갑을 선물해 줬었다. 명품 지갑은 절대 아닌 10만원도 안 되는 지갑이었다. 아내는 자신이 생각한 모든 기능이 다 들어있다며 지갑을 너무나 좋아했다. 아내의 좋아하는 모습에서 남편 노릇을 한 안도의 한숨을 쉬었었는데, 이 게임CD가 그것에 대한 보답으로 느껴졌다.
어느 영화에서, 자신을 좋은 사람으로 만들게 하는 이유는 사랑하는 사람이라 했다. 막상 CD를 받으니 앞으로 아내에게 더 잘해줘야 한다는 각오가 하늘을 찔렀다. 그리고 그 기세를 이어받아 난 주말 내내 고스트 오브 쓰시마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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