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장을 나왔다. 결혼식이 전부 끝났다. 결혼식장을 나서며, 결혼을 한 것보다 드디어 결혼식을 끝냈다는 기쁨이 몰려왔다. 손을 잡고 함께 걷고 있는 아내의 얼굴을 힐끗 보았다. 얼굴에 미소가 가득한 것을 보니 나와 같은 생각임에 틀림없었다. '좋아요'라 물으니 어서 호텔로 돌아가서 머리에 꽂은 수십개의 머리핀을 빼고 싶다 하였다. 난 늦은 점심을 닭갈비로 먹는 게 어떠냐 했고, 아내 역시 크게 웃었다. 수개 월 동안 끙끙대던 문제를 해결하였으니 무엇을 해도 다 되고, 할 수 있는 시간처럼 느껴졌다. 5월의 오후, 봄바람을 맞으며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결혼식을 준비하였던 험난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할아버지 기일인 작년 정월 대보름에 친척들이 가장 궁금해 했던 것은 나의 결혼이었다. 결혼을 하기로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암암리에 어머니가 홍보해 놓은 것 같았다. 친척들은 그래서 결혼식은 도대체 언제 하냐고 채근했다. 가을로 생각한다 했을 때, 모두들 괜찮다고는 하며 한마디씩 보탰다. '가을에 농사가 거의 끝나지만 난 괜찮다','나는 한가한데 너 결혼식을 꼭 보고 싶다는 조카 재석이가 바쁠 것 같다.' 라는 불만 아닌 불만과, '결혼식은 식장 예약이면 다 끝난 기라.' 라고 말씀하시는 울산 고모부(자식 결혼 유경험자)의 가이드도 있었다. 난 할 수 없이 결혼식장이 있다면 5월에라도 하겠다는 선에서 마무리를 지었다. 어차피 내 고향에서 예약식장은 한 곳 밖에 없었다. 그런데 다음날, 회사에서 흥분된 목소리의 어머니와 큰고모의 전화를 받았다. 5월에 딱 하나 남은 시간대가 있는 데 예약을 하겠냐고 물어왔다. 설마가 결혼식을 잡았다. 난 모든 걸 포기한 나직한 목소리로 '그럽시다'라 했다.
결혼식장을 예약하니 3개월의 준비 시간이 주어졌다. 인터넷을 찾아보면 결혼 준비 메뉴얼이 있다고 하던데 아무리 검색해도 하는 이야기가 천차만별이었다. '사진은 남는 것이니 아끼지 말아야 한다', '신부 화장은 서울에서 하라', '어머니 한복이 식장 분위기를 좌우한다.'부터 식권이 모자랐을 때 대처법까지, 내가 알아야 하고 해야 하는 일이 회사일처럼 느껴졌다. 아내와 함께 우리만의 결연한 기준을 정했다 싶었지만, 결혼식장의 매니저와 상담을 받으며 좌절하고 말았다. 이미 이들은 프로였고 우리는 결혼을 처음 하는 아마추어였다. 아슬아슬하게 모든 사항이 패키지로 묶여 있었다. 사진은 우리가 알아서 하겠다고 하니 인생에 하나뿐인 이 좋은 것을 이 가격에 왜 안 하냐 타박했다. 결국 결혼식 복장과 화장만 계약하고 나머지는 우리가 준비하기로 하였다.
결혼식의 각종 옵션 정리는 결혼식 준비의 출발에 불과했다. 인터넷 청첩장 업체의 모든 카드를 다 확인한 뒤 결정한 청첩장, 그리고 청첩장 문구(친지들 버전과 회사 버전을 따로 했다.), 결혼식은 모두가 함께 하는 것이라 생각하여 만든 셀프 식전 동영상과 식중 동영상, 신랑과 신부의 결혼 선언 문구, 엘가의 '사랑의 인사'로 입장하기는 싫어 직접 고른 입장과 퇴장 음악, 신랑 아버지 축하 말씀과 축가 결정까지, 잡다하면서도 뭔가 중요한 일들을 결정하고 모니터링 해야 했다. 그 중 가장 힘들었던 것 중 하나는 누구까지 결혼 연락을 해야 하는 것인지 기준 정하기였다. 주변에서는 결혼식은 일단 알리는 게 예의라 하였다. 나름의 연락을 많이 돌렸다 싶었지만, 사회를 보기로 한 가장 친한 친구가 어쩜 그렇게 연락을 돌리지 않았냐 했다. 결혼식 바로 전날 저녁, 그 친구가 대신 연락을 돌린 사람만 10명이 넘었다.
호텔에 돌아오자마자, 아내는 옷부터 갈아입은 뒤 씻겠다며 화장실에 들어갔다. 난 셔츠만 급하게 벗어 던지고 침대에 누었다. 천장에는 자연스럽게 오늘 새벽부터의 경과가 상영되었다. 모든 것이 내 계획대로 진행되었고, 감동이 있었다는 이야기부터 진짜 웃겼다는 이야기까지 결혼식 평가 또한 괜찮았다. 일주일 전 축가자가 약속을 어겨서 내가 축가를 부른 위기의 순간만 빼고 다 흡족했다. 통과의례라 했던가. 인생에 꼭 거쳐야 하는 관문이 몇몇 있고, 결혼식도 그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생각되었다. 피하지 못할 일을 꼭 해야 한다면, 그 끝을 그리며 버텨내는 것도 필요하다는 교훈 아닌 교훈을 결혼식에서 얻었다. 아내는 양 손에 머리핀 한 뭉치를 보여주며 드디어 머리가 가벼워졌다고 좋아했다. 그러면서 이번 결혼식이 너무 마음에 들었으니 리마인드 웨딩 계획을 물어왔다. 대답 대신 난 그저 지그시 눈 감았다. 닭갈비도 먹으러 가야하고, 저녁에는 대구에서 올라온 아내 친구들도 만나려면, 지금은 이러고 있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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