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 개혁
2년 전 모셨던 여자 부장님이 조직개편을 통해 내 부서로 다시 오셨다. 부장님은 메일을 통해 각자 개인적으로 원하는 점을 답변 달라고 하셨다. 업무적인 내용이야 적는다 한들 반영되기는 힘들터. 간단히 원론적인 이야기만 적은 다음, 생각하는 2016년 목표를 적어 회신했다. 올해는 월 야근시간을 30~35시간 정도 유지하겠다는 것이었다.
야근이 참 많다. 특히 회사 중에 내 부서가 가장 많다. 괜히 작년 시행된 우수부서로서 꼽힌 게 아니었다. 야근 시간으로 치자면 최고였다. 야근 수당 담당자가 우리 부서원들 중 최대시간을 넘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다시 확인한다는 소리가 있을 정도다. 여기서 가슴에 사뭇치는 비극적인 사실이 있다. 이 부서에서 내 야근시간이 최고로 높은 편이다. 음력 정월대보름 날로 기억한다. 제사 때문에 정시 퇴근을 하려 하였다. 우리 부서는 물론 바로 옆 부서가 웅성됐다. '최장호 여자친구 생긴거냐'였다. 종종 농담반 진담반으로 내 정시 퇴근은 많은 이들의 호기심을 불러 일으킨다. 저자 강의가 있어 일찍 퇴근했던 다음 날, 부장님은 내 보고를 받으시더니 요즘 좋은 일 있냐고 슬쩍 물으셨을 정도다.
최대 인정이 되는 야근 시간이 월 44시간이다. 입사 후 2년 동안 단 번도 44시간을 안 넘긴 적이 없다. 솔직히 회사의 월급만으로는 생활하기 힘들다. 야근은 돈이고 이는 생활이다. 그렇다고 야근을 돈 때문에 하는 건 아니다. 정말 일이 쏟아진다.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었다. 내 생활도 있어야겠고, 이렇게 하다가는 금새 지칠 것 같았다. 나를 다 태워버릴 수 있겠다는 걱정도 들었다. 돈도 일도 중요하다지만 내가 가장 중요했다. 올해는 월 야근 시간을 줄이는 개혁을 본격적으로 4월부터 단행했다.
야근 시간을 줄이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야근 시간에 새로운 것을 하자는 것이었다. 회사 동료가 스쿼시를 배운다면서 함께 하자고 했다. 월,수,금요일의 저녁 9시 강습 시간으로 3개월치 회비를 냈다. 헬스장도 이용할 수 있으니 이참에 쓸데없는 지방을 태워버리리라 다짐했다. 이걸로는 부족하여 매주 수요일에는 한겨레문화센터 수업도 질렀다. 서초에서 야탑까지 가야하기 때문에 저녁 6시면 득달같이 퇴근 처리를 해야한다. 나란 놈에게 속은 세월이 하루 이틀이랴. 회사에서 전화영어를 1달간 지원해 주겠다고 하여 신청했다. 아침 8시로 정했다. 그래서 월, 수, 금은 반드시 아침 8시 전에는 출근해 있어야 한다. 대신, 야근으로 해야 할 일은 1시간 이른 출근으로 충당한다. 수당은 주니까 이게 더 괜찮은 것 같다.
4월달 야근 시간은 30여시간 일했고, 5월달도 비슷한 것 같다. 돈의 적게 벌더라도 뭔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 같아 마음이 편하다. 한 가지 걱정이 있다면...... 저렇게 야근 대신에 뭔가를 가득 채우고 지내니 의외로 몸이 피곤하다는 점이다. 머리 싸매고 추가 개혁안을 내놓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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