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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의 키가 작아질수록/생각을 모음과 자음의 만남으로

안녕, 프레드릭이야

 안녕, 프레드릭이야

 

 안녕, 난 프레드릭이야. 그래 그 게으름뱅이 쥐돌이 시인이지. 놀라진 않았겠지? 하도 내 이야기를 궁금해해서 이렇게 직접 편지를 썼어. 5월은 누군가에 편지를 쓰기 좋은 달인 것 같아. 비록 오늘은 비가 많이 왔지만, 이제 이를 자양분 삼아 온 지천이 푸르름으로 덮이겠지. 또 딴 생각에 빠지려하네. 이해해주길 바래. 아마 '그 쥐가 이 쥐가 맞긴 맞나 보네 '해도 좋아!

 

 무슨 이야기부터 해야 할까? 진부한 표현이지만, 막상 자판에 손을 대니 쓸 말들이 사라지는 것 같아. 아마도 너는 내게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이, 왜 그렇게 일은 안 하고 '생각'만 했냐는 것이겠지? 생각이란 말도 어떤 사람들은 '그냥 놀았다'라고 말하기도 하니 난 정말 괜찮아. 글쎄, 이 부분에 정답은 없는 것 같아. 난 분명 우리네 친구들을 위해 실물의 음식이 아닌 마음의 양식을 준비해 왔다고 생각하거든. 오늘날 우리를 있게 한 것은 당대의 현실을 이겨내고자 하는 '이상' 아니었을까 싶어. 물론 이러한 '이상' 또는 '공상'이 당장의 현실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했을 수도 있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단순히 빵이 아닌 꿈 또한 중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어.

 

 문득 이해가 안 갈 수도 있고, 나를 위한 변명이라 생각할 수도 있을거야. 오히려 이런 나를 받아준 내 친구들이 대단하고 생각할 수 있어. 여기서 내가 호소하고 싶은 것은 이런 거야. 예를 들어 볼게. 흑인 인권 운동의 시작은, '내가 왜 버스에 앉을 수 없는 것인가'라는 생각의 시작에서 출발했다고 생각해. 그래, 맞아. 백인은 버스에 앉아 있을 수 있지만 흑인은 그럴 수 없던 시대, 한 흑인 여성은 묵묵히 버스에 앉았지. 백인의 협박과 모욕을 참고 말야. 이를 계기로서 대대적인 흑인 인권 운동이 미국에서 시작되었어. '이상'이 현실을 이끌어 낸 것이지. 아! 오해는 말라고. 내가 그런 일을 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 또한 생각해 볼 여지가 있음을 말하고 싶은 것이니까. 그래도 나를 이해해준 친구들에게 언제나 감사해.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한국 친구들에게는 솔직히 섭섭한 것도 있어. 항상 한국 친구들은 그 '개미와 베짱이'의 이야기를 나와 대비 시키더군. 특히 그 베짱이(이제 고인이 되어 실례를 무릅쓰고)와 나를 동일로 일치시켜. 그러다 다른 생각도 해봤어. 엄기호 작가의 '우리가 잘못 한 게 아니었어'를 보니, 이제 한국은 개미처럼 살아도 베짱이처럼 살 수 없는 시대라 하더라고. 아무리 꿈을 꿔도 현실을 벗어날 수 없는 시대에 '개짱이'가 되자는 이야기도 있다는 대목에서 슬쩍 다행이라 생각도 했어. 아무튼, 아무래도 어렷을 적부터 성실과 발전을 강조해 온 사람들에게 서양의 내 이야기가 조금은 낯설 수 있겠다 싶어. 그래서 나와 너의 만남이 늦은 것에 나도 참 안타깝단다.

 

 나와 내 친구들은, 우리의 이야기를 읽는 사람들을 통해 언제나 살아가고 숨쉴 수 있어. 부럽지? 아무렴 '너는 시인이구나' 물었을 때 '당근이지'를 외친 나인데 이정도 뻔뻔함이야. 정말 농담이야.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이야기에 고민을 하고 이야기를 하지. 정말 기쁜일이야. 이것으로도 정말 행복해. '다양성, 소수에 대한 존중, 예술'이런 부분을 내가 의도했던 것은 아냐. 중요한 것은 이것을 받아들이는 너에게 있다고 생각해. 어려운 이야기로 생각해도 좋고,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로 남을 수도 있어. 아무렴 어때. 이미 너의 마음에 숲에 잔물결을 일으켰잖아. 그에 대한 보답으로 너에게 편지를 썼어.

 

 참, 잊어버릴 뻔 했네. '이제 출근을 하게 하는 건 누구?' 라는 너의 질문에 내 대답을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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