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연필의 키가 작아질수록/생각을 모음과 자음의 만남으로

성장한거 같아, 분명

 성장한거 같아, 분명

 

 약 한 달 전이었다. 직장의 여자 동료가 스쿼시를 등록했다 하면서 함께 치자고 하였다. 정말 스쿼시 치는 게 문제가 아니라 '나'와 함께 쳐도 상관 없겠냐고 물었다. 괜찮다고 하였다. 분명 주변에서 이러쿵 저러쿵 입방아에 오를텐데 괜찮을까 싶었다. 물론 나야 상관이 없었다. 웃어 넘기면 되니까. 취미하나 더 만들고 싶었다. 내가 사는 서울대입구 역에서 다섯 정거장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야근 생활도 개선할겸 여러모로 좋은 기회라 생각했다.

 

 첫주 포함해서 3번만 함께 스쿼시를 쳤다. 그 후 이런저런 일들로 여자동료는 레슨을 빠졌다. 이런저런 일들이 어떤 일인지도 몰랐다. 다만 그 여자 부서가 요즘 굉장히 바빠 야근이 많은 것은 알았다. 그래서 레슨 시간에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먼저 연락은 해 보았고 답장은 아주 늦게 왔다. 그 즈음이었다. 레슨을 시작과 동시에 회사에서는 나와 그 동료가 함께 스쿼시를 배운다는 이야기가 퍼졌다. 여자 동료쪽 부서에서 말이 나왔다. 몇몇 사람들이 농담 삼아 '거리도 먼데 왜 꼭 스쿼시를 거기서 배워야 해' 라거나 '여자 동료가 함께 치기 싫었는데 굳이 같이 치자고 했다며' 정도의 놀림은 그냥 웃어 넘겼다.

 

 유야무야 혼자 스쿼시를 치는 날이 많았다. 그 시간대에 나만 혼자니 강사도 좀 난감해했다. 운이 좋으면 레슨이 끝난 사람이거나, 아니면 내 뒷 시간의 사람들을 데려다 레슨을 하였다. 지난 금요일, 수업 시작 전에 동료는 또 빠진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어떤 말을 할까 하다가 그냥 알았다고 했고, 오늘 수업에도 나오지 않았다. 아예 빠지겠다는 메시지도 없었다. 퇴근 전에 오늘은 올 수 있냐고 물어 봤어야 했나. 아니면 지난 금요일에 앞으로 잘해 보자는 말을 했었어야 했나. 그냥 둘이 같은 수업을 배우자는 것 뿐이었으면 굳이 서로 미안할 필요도 없는 건가. 내가 채근하면 오히려 부담을 주는 건가 등등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강사는 한 달이 되었으니 연장 여부를 결정해 달라고 하였다. 집에 오는 길에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다. 왠지 내가 겪어 온 일들이 되풀이 되는 것 같아 무서웠다. 흔히 이런 일들이 있었을 때, 난 관계를 끊어버리는 쪽으로 선택을 하였다. 난 정말 잘못한 것도 모르겠고, 그동안 관계의 발전을 위해 너무나 노력했었기 때문에 당당하다고 느꼈었기 때문이다. 이번 스쿼시도 똑같다고 생각했다. 이대로 여자 동료가 스쿼시를 그만 둔들, 내가 아쉬울 것은 하나도 없었다.

 

 책상에 앉아 스탠드를 켜고 모니터만 가만이 바라보니, 과거의 내 성격으로 후회했던 시간들이 나타났다. 그 때 좀 더 유했으면 어땠을까. 고민 끝에 여자동료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연락이 왔었으면 서로 좋았을 것 같다. 한 달이 지났으니 스쿼시 강의를 더 배울지 결정을 해야 한다'는 말을 보내며 잘 쉬라고 하였다. 약 2시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답은 없다. 그래도 기분은 나쁘지 않다. 내 성격의 문제 해결을 위해 분명 한 차원 높게 노력은 한 것임이 틀림없다. 정신적으로 성장한 것 같았다. 분명.

 

 내친김에 K에게 문자를 보냈다. 매번 딱딱하고 차가운 성격의 나같은 친구를 둬서 고생많았다고 했다. K는 유로 2016에서 스페인이 체코를 이겼다며 빨리 자라고 하였다. 달리 할말이 없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