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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의 키가 작아질수록/생각을 모음과 자음의 만남으로

글 쓰고 앉아 있네!

 글 쓰고 앉아 있네!

 

 생활 개선 운동으로서 100일 동안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하필 그것이 글쓰기였던 이유는 잘 모르겠다. 한창훈의 '소주 먹습니다.' 라는 글이 멋있었을 수도 있다. 그는 삶이 힘겨운 순간순간마다 소주를 마시고 싶다고 하였다. 난 그 순간순간마다 소주 대신 '글쓰기'란 단어를 집어 넣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혼자 한 다짐이 작심하루로 끝났던 처참한 광경을 목도하고 있었다. 무려 20여년 씩이나 말이다.  그런 나를 알기에 일종의 글쓰기 스터디를 가입하고, 나름 거금을 투자하여 시작하였다.

 

 그 시간이 50일이 지났다. 아직까지 50일 밖에 안 지난 것인지, 벌써 50일이나 지난 것인지 잘 모르겠다. 모를 수밖에 없지. 내가 지금까지 글을 써 오고 있는지도 솔직히 실감이 나지 않는다. 50일 동안 쓴 글들의 제목만 정리해보았다. 자연스럽게 그 시간의 고민과, 고통과, 아쉬움이 오롯이 베어 나왔다. 아울러 당시의 동료들이 전달해 소중한 감상평들도 함께 딸려 왔다. 무언가를 만들고, 남기고는 있다. 다만, 공허함이 가시지 않는다. 더 잘했어야 했다는 욕심일까, 이런 거였냐는 불만족일까, 아니면 찾지 못한 다른 이유일까.

 

 생각에 잠긴다. 글쓰기 100일의 날을 상상해본다. (글을 쓸 때도, 해외 출장을 떠날 때도, 수업을 들을 때도 항상 마지막부터 생각한다.) 50일 뒤 글쓰기를 완주한 내 모습을 찾는다. 왠지 덤덤할 것 같다. 생활의 습관이 바뀌거나, 큰 보람을 느끼거나, 환호하지는 않을 것 같다. 단지 100일 동안 무엇하나 진득하게 해 냈던 점은 높이 평가를 할 것 같다. 그래서 누군가 '그 동안 뭐 하셨어요?' 라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할 것 같다. '글 쓰고 앉아 있었어요.'라고 말이다. '왜 글 쓰셨어요?'라 할 것이다. 그러면 '앞으로도 글 쓰고 앉아 있으려고요.' 라며 친절하게 부연 설명을 해 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상세한 설명에 부족함을 느껴, 총평을 부탁한다면 이렇게 말해 줄 것이다. '처음엔 보석을 만드는 세공사가 된 기분이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벽돌 디자이너가 맞는 것 같아요. 다 쓴 글을 보면 각 문단이 하나의 벽돌로 보이거든요. 하루에 그런 벽돌을 3~4개 만들었으니까요.'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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