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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의 키가 작아질수록/생각을 모음과 자음의 만남으로

빈 공간에 채울 시간을 생각하다

빈 공간에 채울 시간을 생각하다

 

 이사를 하였다. 서울의 월세방을 정리하여 고향집으로 내려왔다. 일년 전에 지금의 이사자리에 짐을 풀며 최소 2년은 있겠다고 생가했다. 더이상 정처없이 떠돌아 다니는 것이 싫었다. 그러나 회사일과 엮어 집 계약을 종료했다. 1년 전 그랬던 것처럼 가장 친한 친구의 차를 빌렸다. 1주일 동안 이사짐 생각만 했었는데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겨우겨우 친구가 도착하기 5분 전 마무리를 하였다. 짐을 본 친구는 깜짝 놀라며 1년 이곳에 올 때보다 짐이 없음에 놀랐다. 

 

 이번 이사의 컨셉은 무조건 쓸데없는 것은 버리자는 것이었다. 이불도 버리고, 반창통도 버렸다. 전자레인지와 새로 샀던 의자까지 버리려 했으나 친구가 말려 차에 싣었다. 앞으로 쓸 필요가 없을 것 같아 대범하게 버렸다. 그래도 끝까지 내 속을 썪인 것이 있으니 책과 주간지였다. 앞으로 분명 볼 시간도 없고, 그렇다고 버리자니 그 속의 내가 모를 정보가 있을 것 같아 너무 아까웠다. 참고로 대학교 기숙사에 살던 시절, 기숙사생들의 이사짐 배송 업체가 유일하게 운송 거부를 했던 짐이 내 짐이었다. 책이 많아 무게가 상당했기 때문이다. 이사의 적은 책이고 무게도 상당할 것 같아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결국 가져가는 쪽으로 했고 전체 짐의 1/3이 서적류가 되었다.

 

 이사짐을 차에 옮기고 점차 내 삶의 공간이었던 곳이 공허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이 기분이 너무나 싫었다. 자주 겪었고 겪을 때마다 우울해졌다. 또 한 삶을 마무리지었고 아쉬움이 밀려왔다. 첫 자취는 대학교 1학년 때 가장 친한 친구랑 함께 살았다. 첫 달을 넘지 않아 친구와 삐걱대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 집에 남자 둘이 산 것이 기적이었다. 어쨌든 첫 자취는 그렇게 보냈다. 그 뒤 남들은 정말 못 산다는 좁디 좁은 집에서도, 돈 없는 처지를 알고 선배의 선처도 교회 기숙사에서도, 외국에서도, 옥탑방에서도 살았다. 이사의 횟수가 많을수록 뭔가 가난하지만 씩씩하게 살은 것 같지만 허세가 큰 것 같다. 여러 기회가 주워졌고 그것에 무엇을 남겼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닐까 한다.

 

 이사를 마무리 할 쯤, 언제나 의식처럼 다시 공허된 그 공간을 사진에 담았다. 단 한 장의 사진을 확인하고 문을 닫았다. 이사의 시간은 20분이 체 걸리지 않았다. 친구의 차를 빌려 고향집으로 돌아 왔다. 서울 생활을 시작한지 3년을 다 채우진 못했지만 나름 재밌었던 시간이었다. 이제 이곳에 잠시 거처를 하며 다음에 살 곳을 머리속에 그리고 있다. 그때는 지금의 기분과 다짐을 잊지 않을 것이라 여기에 남긴다. 이사가 많아 귀찮은 것도 있지만 좋은 점도 있다. 새로운 각오를 다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근데 이놈의 시골집 온도계가 35도다. 여러모로 열이 가득한 내 33살 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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