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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의 키가 작아질수록/생각을 모음과 자음의 만남으로

[매블1] 잡탕

 왜 그런 거 있잖은가. 뭔가 말을 하고 싶은데, 뭔가 털어놓고 싶은데, 답답해서 (죽는 건 아니고) 가슴에 열꽃이 필 때가 있지 않은가. 나란 사람도 모르겠고, 막연히 다가올 미래가 불안했던 대학생 시절에는 특히나 심했다. 그럴 때 술만 먹는 주당 동순이에게도, 나와 다른 B형 재용이에게도, 나에 대해서는 나보다 더 잘 안다고 자부하는 (당시) 여친에게도, 우리 어머니, 아버지에게는 더더욱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개인 블로그였다. 아무거나 적기로 하였다. 본 것을, 들은 것을, 느낀 것을 그냥 적었다. 자판을 때리는 것을 마치 몸에서 독 성분을 내뱉는 것으로 여겼다. 그렇게 2009년 봄에 이 블로그를 열었다.

 

 내 블로그의 주제는 딱히 없다. 잡탕이다. 시작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설마, 앞으로도?) 주로 이것 저것에 대한 기록이 주를 이룬다. 짧게는 메모장의 기능이다. 언젠가 사람들 앞에 써먹으면 멋있어 보일 문구들을 남겨 놓는다. 대학교 4학년, 토익 점수보다 목숨 걸고 쥐어 짜냈던 리포트들의 서문도 여기 남겼다. 불현듯, 그 리포트 서문을 베껴서 바로 내 앞 순서에서 발표를 했던 애들은 잘 살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각설하고. 동영상 편집 기술을 배웠을 때는 편집했던 영상들도 여기 남겼다. 저작권 문제로 다 짤렸지만 말이다. 다시 불현듯 생각해보니, 지금은 남들이 다 유튜브에 올려 조회수로 돈 벌고 있다. 시대를 너무 앞섰고, 속상하다.

 

 그러다 한 번은 블로그 조회수가 터진 일이 있었다. 한 번에 조회수 천 명 이상을 기록했다. 내 블로그인가 싶었다. 그 여진은 2~3일 동안 지속되었다.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일본 영화 한 편의 후기를 썼었다. 이게 제대로 얻어 걸린 것이, 그 영화의 일본 여주인공과 가수 이승기의 열애설이 터진 것이었다. 누나는 내 여자라고 외치던 연하의 남동생이 돌연 여친이 있다 하니 여러 여성들이 화가 났던 게 아닐까 지금도 생각한다. 그 때 조회수에 맛을 들였다. 주구장창 영화 후기만 올렸었는데, 각주구검이요 수주대토였다. 영광의 순간은 지금까지도 재림하지 않고 있고, 근근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지금껏 쓴 글 중에 가장 인기있는 글은 결혼식에 아버지가 읊었던 결혼식 축사이다. 결혼에 관련된 글이니 역시나 가장 인기가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아버지의 축사가 반응이 너무 좋았다. 그 순간을 간직하고 싶어서 블로그에 올렸었다. 참고로 그 축사.... 내가 썼다. 어찌되었든, 바로 그거다. 이 블로그가 살기 위해서는 생활 밀착형 글을 써야 한다. 알면서 왜 안 쓰는지는 미스터리지만 말이다. 두 번째는 카사블랑카의 명대사로 적어 놓았던 '네 눈에 키스를'이라는 아주 짧은 글이다. 세 번째부터는 순위가 오락가락 하는데 역시나 메모성 글이다. 그런데 이건 분명하다. 이 블로그의 우주를 차곡차곡 채운 약 900개의 글들은 버릴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모두 내 발자국이니 말이다.

 

  올해는 이 블로그에 에드센스를 달아서 돈을 버는 모델을 고민 중이었다. 시간 외 근무를 줄여서 차라리 글도 쓰고 돈도 버는 행복한 상상을 했었다.  역시나 어려울 것 같다. 그 결심을 하자마자 블로그 대문부터 고치려 했는데, 3개월째 휴업 중이다. 또한 돈을 의식하면 편안한 마음으로 여기에 낙서를 할 수 없을 것이다. 마치, 노벨상의 저주처럼 말이다.(노벨상을 받은 연구자들은 더 큰 업적만 생각하다 슬럼프에 빠진다고 한다) 복잡한 생각은 다시 각설하고, 그냥 집에서 입는 편안한 트레이닝 바지처럼 이 블로그를 대하고 싶다. 그러다 내가 이 별의 여행을 떠날 때 한마디 할 수 있으면 족할 것 같다. 당신에게 못다한 내 이야기는 reader1.tistory.com에 남겨 놓았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