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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의 키가 작아질수록/생각을 모음과 자음의 만남으로

내 몸 배터리 충전법

 내 몸 배터리 충전법

 

 노회한 내 휴대폰, 이름하여 다들 놀라는 아이폰 4S님은 향년 구매 4년을 지나가고 계시다. 3G이기 때문에 남들이 다 하는 웹검색은 꿈도 못 꾼다. 카카오톡 노랑 화면을 한 10초간 보고 있어야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으며, 가끔은 메시지도 확인 못하고 튕겨 나온다. 가장 심각한 것은 체력이 아닐까 한다. 인터넷 기사 20분만 보면 순식간에 배터리가 빨강이 되거나 저전력 모드로 바뀌기 전에 꺼진다. 냉큼 보조배터리를 끼어 심장박동을 깨운다. 전기를 빨아 먹으며 충전이 되고 있는 휴대폰을 볼 때마다 내 몸 배터리 충전에 대해 생각해 본다.

 

 첫째, 관계에서 오는 충전이다. 모임에 나가거나, 지인에게 전화를 하거나 약속을 잡는다. 적극적이지는 않다. 남이 약속을 제안하면 무조건 수용한다. 요즘 들어서는 종종 먼저 약속을 제안하기 시작했다. 사람들과 대면하여 여러가지가 좋은 것 같다. 나와 같은 고민이 나만의 문제가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더욱 상대가 소중해진다. 나를 응원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정신적으로 머물 곳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회사가기가 좀 더 수월해진다.(회사가기 싫어지는 일요일, 부쩍 이런 전화를 많이 돌린다.) 넓은 관점도 얻을 수 있다. 이건 정보의 문제와는 다른 것이다. 정보가 아닌 식견이다. 그 사람이 직접 경험한 지혜를 대화와 경청으로 얻는다. 독서보다도 LTE급으로 빠르게 말이다.

 

 둘째, 지적 습득이다. 거창해 보이지만 밀린 신문과 주간지, 몇 쪽의 책을 보는 게 전부다. 똑똑해지는 느낌이 좋다. 두뇌에게 뭔가 주입하는 것 같은데 꼭 휴대폰이 전기를 빨아 먹는 기분이 아닐까 한다. 예로부터 똑똑한 모습을 동경해 왔다. 토론을 하면, 누군가가 했다는 말을 인용하여 한 마디 더하면 뭔가 있어 보였다. 그런데 이게 좀 과하니 내 생각이 없어졌다. '그건 그 사람 생각이잖나요'했을 때 궁색해졌다. 귀가 얇아 그랬던 것이라 사과하고 싶어졌다. By the way, 불러주는 곳이 없으나 가만히 앉아 할 수 있는 것은 읽고, 기록하는 일밖에 없었다. 티끌들이 모여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됨을 느끼는 순간, 그것이 재충전이 아닐까 한다.

 

 꾸리꾸리한 셔츠만 입고, 매번 야근으로 회사를 지키는 '경비' 명단에(근래에 개선을 좀 하였지만) 있는 내가 회사사람들은 안타깝나 보다. 종종 주말에 뭐 하냐 묻는다.(그러면 소개팅이나 해주던지. 이는 위선이다!) 간단하게 대답한다. 주말 시간외 근무 올렸다고. 회사 나온다고. 지난 금요일에도 이렇게 말했더니 상대방은 그냥 웃는다. 나도 웃었다. 오늘 나갔어야 하지만 당당히 출근하지 않았다. 충전이 좀 필요했다. 그렇게 웃게하여 안심을 시킨 뒤 언젠가 쌩쌩히 충전한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델리스파이스가 그랬던가. 항상 엔진을 켜두겠다고. 항상 엔진을 켜두기 위해 그만큼의 배터리도 필요하다는 것쯤은 상식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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