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미국은 연설문 표설 시비로 난리가 났다고 한다. 공화당 대선후보로 지목된 이의 부인이 자신의 남편을 향한 지지 연설을 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 연설문이 2008년도 당시, 현재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부인이 했던 연설을 표절했다는 것이다.
개인적인 충격을 받았던 것은 연설문 표절이라는 사실이 그렇게까지 미국을 뒤흔들 수 있는가였다. 물론 연설문을 표절했다는 점은 중대한 문제점 중 하나일 수 있다. 장차 영부인도 될 수 있는 사람의 지적 수준을 의심할 수 있고, 후보의 도덕성 검증 기준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도 이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유사사례가 있었고 당시는 찻잔의 미풍으로 그쳤었다. 점차 미국이 부러워지기 시작했다. 연설문의 중요성, 말과 글의 가치를 잘 알고 있는 국가가 아닐까 싶었기 때문이다.
연설문의 중요성은 '대통령의 글쓰기'를 읽고서였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연설문을 읽으니 이만한 글쓰기 교재가 없다 싶을 정도로 좌절감만 주었다. 연설비서관들이 작성을 하였다고는 하나 항상 퇴고는 대통령들이 그들의 목소리를 담았다고 한다. 연설문 하나하나에 날을 세어가며 고치고 또 고쳤다는 데, 이는 대통령이란 글을 읽어 말로 전하는 직업임을 간파한 게 아닌가 싶었다. 또한 글이란 결국 후대에게 전해는 것이기 때문에 책임감과 소명의식이 남달랐던 것이라 생각되었다.
매번 우리나라의 대통령 취임 연설때마다 아쉬운 소리를 들었다. 미국의 '국가가 국민을 위해 뭘 해줄지 원하기 보다는 국민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자'의 케네디 연설문, 링컨의 '국민 시리즈(by,of,for the people)' 정도는 아니더라도 뭔가 있어보이는 대통령 취임 연설문이 없다는 것이다. 초대 워싱턴 대통령도 전쟁 통에서도 '우리의 정신력을 시험하는 시간에 놓여있다'라며 일장 연설을 하였단다. 이쯤에서는 연설문 쓰는 것도 유전인가 싶을 정도다.
상기 상황을 종합 고려해 보았을 때, 이러니 연설문 표정이 장난이 아닌가 싶다. 각종 장관 후보자들의 검증을 볼 때, 치사하리만큼 예전의 글 한 토시를 놓고도 시시비비를 따진다. 글과 말이 곧 그 사람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을 것이다. 그간 내 블로그에 쓴 글이 나를 발목 잡지는 않겠지. 그건 좀 치사하다. 글이야 일단 쓰면서 늘어나는 것인데. 그간 문제있는 글을 썼다면 심심한 사과를 남깁니다.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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