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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의 키가 작아질수록/생각을 모음과 자음의 만남으로

유입키워드 500을 맞이하여

 유입 키워드 500을 맞이하여

 

 2009년 4월이었다. 예비 실업자를 준비하는 대학교 4학년 첫 중간고사 때로 기억한다. 가슴의 답답함을 어딘가 풀 곳이 없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친한 친구가 있더라도 내면의 근본적인 외로움, 정말 나 자신의 생각을 쏟아낼 곳이 필요했다. 이에 개인 블로그를 개설하였다. 다른 사람들은 취미나 기술, 각종 정보의 전문성을 내세워 블로그를 한다지만 난 내가 생각한 것을 남기는 목적으로 블로그 운영 방향을 잡았다. 실상 운영이랄 것도 없었다. 근 8년 동안 성실하게 글을 써본적이 거의 없으니까 말이다. 근래에 하루하루 글쓰기를 하며 방문자가 꾸준히 늘더니 드디어 유입 키워드가 500개로 나왔다. 오호라.

 

 처음에는 블로그 방문자는 거의 없었고 글이나 사진 또한 올리지도 않았다. 그러나 대학교 때 쓴 내 레포트들을 모르는 사람에게 평가를 받고 싶어 서문만 올리기 시작했다. 뭐, 야심차게는 시작했지만 당최 방문자 숫자에 전혀 미동도 주지 않았다. 당연히 기분은 흔쾌히 좋았다. 내가 쓴 레포트들이 차곡차곡 쌓일 때마다 대학생활에 뭔가 한 것이 있어 보였다. 점차 카테고리를 늘려나갔다. 멋져 보이는 말들, 짧은 글들을 남기는 칸도 만들고, 책과 영화를 적는 감상평을 적는 부분도 만들었다. 나 자신을 돌아보는 글들도 종종 적어 나갔다.

 

 방문자는 해가 바뀌어도 하루 10명을 넘기기 힘들었지만, 종종 잊지 못할 일들도 경험했다. 대학 레포트는 발표가 끝난 뒤 게재를 하지만 단 딱 한번으로 마지막 대학생 발표 레포트는 발표일 전날에 올렸었다. 발표날 당일, 내 앞 발표자의 유인물을 보고 내가 준비한 유인물을 왜 그 사람이 돌리고 있나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발표 내용을 들으니 서문이 나와 똑같았다. 바로 블로그의 내 레포트를 그대로 빼긴 것이었다. 그 사람들에게(심지어 과제를 두 사람이 공동으로 했다!) 피해를 줄까봐 내 발표 시간에는 서문 자체를 빼고 발표했다. 이 외에도 영화 감상평을 썼었는데 당시 여주인공와 이승기 스캔들이 나서 하루 방문자 5,000명을 기록한 적도 있고, 블로그 내용을 그대로 빼낀 블로거를 발견하여 다음(daum) 측에 저작권 보호 요청을 했던 적도 있다.

 

 실상 가장 부끄러운 것은 글 같지 않은 글들을 보고 방문자들이 찾아 왔을 때이다. 유입 키워드 및 방문 기록을 보면 '이런 쓰레기 글을 보러 오다니' 싶을 정도로 내가 올린 글이 좋지가 않았다. 목숨까지는 아니더라도 양심적으로 쓴 글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가급적 기승전결이 있는 글을 쓰려고 노력한다. 방문자 수가 늘어가는 것도 기분이 좋지만, 뭔가 쌓여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 보람을 느낀다. 그러다가 거짓말처럼 유입 키워드가 딱 500개가 나온 것이었다.

 

 유입 키워드를 보면 사람의 마음은 정말 종 잡을 수 없는 것 같다. '백거이의 시'가 요즘 인기 글이 되었다. 별 내용도 없는 4줄짜리 시인데 말이다. 시사적이었던 '생리대 후원', 누구나 생각하는 외로움에 대해 썼던 '외로워야 덜 외롭다'에는 리플도 달렸다.(5년만에) 점점 내 마음도 종잡을 수가 없어지고 있는데, 바로 방문자 수에 웃고 우는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편안하게 무언가를 남기려 한다. 누가 보겠다고 그런 것을 의식해야 할까. 마음 편히 나와의 대화를 나누는 시간, 블로그를 운영하는 시간을 갖도록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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