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즈베키스탄으로 해외 봉사를 떠나기 3일 전, 정말 우연하게 모인 중.고등학교 동창들과 2차 술자리가 이어졌다. 단연 화제는 '최장호'가 졸업을 앞둔 인생의 골든타임에, 취업을 해서 입신양명을 해도 모자를 판에 해외봉사를 2년 씩이나 가도 좋냐는 것이었다. 이것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자니, 한 번도 제대로 본 적 없던 이상의 '오감도'가 떠올랐다.
일아해는 가지말라 그러오. 갔다 와서 세상의 낙오가자 될 거라 하오.(너 진짜 내 친구냐) 이아해는 그래도 갔다오라 그러오.(왠지 진심으로 다가오지 않는 말) 삼아해는 혹시 근래 이별이 충격으로 다른 나라에 가는 게 아니냐 하오(좀 더 말했으면 살인났을거야) 사아해는 지금 이 자리에서 그런 말 해봤자 뭐 하냐 그러오. 격려냐 해주자 그러오.(하긴 나도 이 자리가 피곤하다.)
나에게 문제가 있는 걸 알고 있었다. 도대체 왜 지금 시점에 해외봉사활동을 가냐는 물음에 난 머뭇거렸다. 이 애들 앞에서 내가 봉사활동 간다는 이유를 설득할 자신이 없었다. 졸업 후 왜 취업을 해야 하는지, 그런 법은 누가 정해 놓았는지, 지금껏 나는 나 대로 세상에 잘 따랐으니 한 번 삐딱선 타도 되겠느냐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설명을 한다 한들, 이 (때려주고 싶은) 아해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시 다짐했다. 내 선택에 대한 이유를 증명해 보이겠다고.
졸업식을 한 뒤 정확이 이틀 뒤, 우즈베키스탄으로 해외 봉사활동을 떠났다. 선배 봉사단원은 이렇게 말해줬다. 가기 전에 꿈을 꿔라. 그러면 다 이룰 수 있다. 해서 난 미래일기를 블로그에 적었다. 그 미래일기를 아주 가끔 본다. 탐탁지 않다. 누가 묻는다. 아니 모든 사람이 묻는다. 우즈베키스탄에 밭 가는 김태희가 있냐고. 곧 알려줄 것이다. 혹자는 묻는다. 2년의 해외봉사활동의 결과는 만족하냐고. 솔직히, 후회한다. 왜냐고 묻는다. (너무 복합적이기에) 그냥 이라고만 짧게 답한다. 속이 쓰리다. 그럴 때마다 아쉬움이 있기에 후회가 되고, 후회가 있다는 것은 주도적으로 2년의 삶을 살은 것이 아니겠냐 안위를 해 본다.
어쨌든, 그 케케묵은 2년의 이야기를 이제 정리를 해보고자 한다. 해외봉사활동을 다시 꺼내기 싫다. 그러나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의 나와 마주하는 것 또한 앞으로의 나를 성장시키는 것이라 생각한다. 약 10기가가 넘는 사진들과 동영상을 더는 외면하기 싫다. 그래서 해외봉사활동에 대한 연재 아닌 연재를 시작하려 한다. 물론 이 연재가 이것으로 끝날 수도 있고 아니면 정말 100편의 글을 쓸 수도 있을 것이다.(정말로?) 어떻게 쓸지 아무것도 정리된 것도 없다. 시간순, 사건순, 인물순, 아니면 복합적으로 쓸까 전혀 생각해 놓은 것이 없다. 일단 쓰련다.
제목은 '나는 빨따리로 가련다'로 정하였다. '빨따리'는 우즈베키스탄 돈으로 약 1,500원이다. 100미터를 정도를 택시로 간다 하였을 때, 택시기사와 흥정이 가능한 금액이다. 한 번도 이 100미터 정도를 택시 타고 간 적은 없지만, 동료 봉사단원의 무용담을 들을 때마다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할 수 없는 멋진 삶'이라며 동경하기도 했다. 어쨌든, '빨따리'란 말은 왠지 100미터도 택시로 가려는 자신감이 충만한 느낌을 종종 주었다. 우즈베키스탄의 삶이 이러한 자신감의 기록으로 적고 싶어 제목을 이렇게 정했다.
그럼, 오랜 시간 다락방에 숨겨 놓은 직사각형 추억 상자의 먼지를 쓱 쓸어낸 뒤, 살며지 뚜껑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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