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증의 러시아어 배우기(하편)
그렇게 죽느네 마네, 하네 마네, 놓네 품네 하면서 2년 동안 배우고 익힌, 그래서 때때로도 즐거웠던 러시아어 실력은 어느 정도일까.
공식적인 러시아어 실력은, 토르플 초급이다. 우리나라의 2개뿐인 러시아어 인증 시험 중 하나로서 가장 낮은 등급이다. 우즈벡을 너무 사랑하시고, 러시아어 또한 너무 잘 하셨던 코이카사무소 운영요원님도 초급이었다. 당시 그것이 이해가 안 되서 왜 초급이시냐 물었었다. 대답은 간단했다. 일단 가장 낮은 걸 봤고, 그 후로 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지금의 내 상태와 비슷하다. 귀국 후 취업이 우선이니 바로 시험을 보았다. 혹시나 모를 실패 시 타격이 너무 컸다. 일단 시험료가 20만원, 시험 장소는 대구이니 숙박 및 교통비, 일비를 합산하였을 때 부담이 더했다. 일단 러시아어 자격증이 필요했던 시기였다. 당시 내가 공부하였던 저자이자 감독관리 했던 말씀이 기억난다. '너무 낮은 등급을 신청하신 거 같네요.' 난 그날 시험자들 중 가장 먼저 시험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초급은 땄으나 그 뒤 시험은 보지 않았고 이젠 정말 초급인 것 같다.
비공식적 러시아어 실력은, 아주 기본적인 생활만은 가능하다는 것이다. 실상 봉사단원들이 가장 잘 하는 회화가 2개있다. 시장가서 물건 깎아 조르거나 택시비 깎아달라는 것이다. 어떤 봉사단원의 제자가 했다는 말이있다. 코이카 봉사단원들은 다른 말은 하나도 못하면서 돈 깎는 건 너무 잘해 신기하다는 이야기,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다. 듣는 사람 모두가 숙연해 했다나 말았다나. 생활에 필요한 회화부터 몸에 베는 것인 당연하다. 필요하고, 그래서 쓰게 되니까 몸이 기억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문제는 그것에만 머문다는 데 문제가 있다. 처음 만나게 되는 선임 봉사단원들의 현지어 실력에 부러움 가득 하트를 뿡뿡 날린다. 어떻게 공부를 하였는지 스토커처럼 달라 붙어 묻는다. 선임은 그냥 웃는다. 그럴 수밖에 없다. 옆에서 지켜보면 점차 하는 말만 하게 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딱, 생활에 필요한 물건 깎기, 음식 주문하기에서 멈춘다.
'해외봉사 활동을 잘 하려면 현지어를 잘 해야 할까' 많은 이들이 궁금해한다. 국내 교육원부터 나처럼 스트레스에 몸부림 치는 사람, 한 둘 아니다. 내 생각은 이렇다. 잘 해도 좋고, 아무말도 못해도 봉사활동에 전혀 지장이 없다. 성급한 일반화 같지만 대략 맞다고 생각된다. 잘 하는 사람은 그렇다 치고, 언어를 몰라도 된다고? 언어를 못하면 몸으로 하면 되고, 어려우면 옆 한국인 봉사활동한테 물어보면 된다, 정 어렵다면 해외봉사사무소 운영요원에게 전화하면 된다. 이러한 환경 때문에 언어를 아예 하지 않는 단원들도 숱하게 보았다. 특히 그 나라 수도에서 봉사활동하는 단원들은 이 방법을 쉽게 선택한다. 가까이서 문제해결을 해 줄 수 있으니, 해 봐도 늘지 않는 현지어에서 탈출하자는 것이다. 응당 맞는 말이기도 하다. 단, 언어를 알면 알수록 재미는 더 커진다. 그 나라의 참모습, 사람들과의 부대낌을 더 높이고 싶으면 언어 없이는 불가능하다.
봉사단원들에게 당부하나 하고 싶다면, 그래도 현지어를 열심히 하는 이상 잘하려고 하였으면 좋겠다. 배우고 익히고, 그래서 때때로 즐거움을 맛볼 수 있는 더없이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내 기수는 국가별로 봐도 최연소 기수였고, 나이차도 최대 3살이여서 모든 것에 활달하였다. 젊음의 패기에 나만 빼고 각자가 배운 러시아어, 우즈벡어에 열성이 넘쳤다. 봉사단원 워크숍에서 처음 시행된 언어 시험에서 러시아어 1등, 우즈벡어 3등이 우리 기수였다. 우즈벡어 3등은, 러시아어 1등이 우리 기수여서 그랬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쨌든 우즈벡어 3등은 4개월 봉사활동 연장을 하며 사전편찬했다. 그들은 언어를 생활 이상 재미로 열심히 익혔다. 한국어수업을 잘하기 위해 밤새 사전과 싸웠다.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자 러시아를 배우던 이는 우즈벡어를, 우즈벡어를 배우던 이는 러시아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이제(기억할진 모르겠지만 상편에 등장했던) 러시아어를 배우다 우즈벡어를 배우게 되어 섭섭해 했던 그 단원 이야기로 마무리짓고자 한다. 그 단원은 지방 활동지에 내려가서 우즈벡어와 함께 러시아어를 공부 시작했단 소리를 들었다. 둘 다 포기 못하겠다는 의지였겠지 싶었다.
언젠가 모두들 만난 자리가 있었는데, 우즈벡어를 하는 사람들이 그 단원의 우즈벡어가 이상하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원래 현지적응훈련 2개월 동안 우즈벡어를 가장 잘했기에 더 이상했다. 귀국하는 공항에서 그 단원 러시아를 듣고 너무 놀랐다. 정말 기초수준의 단어 하나를 제대로 말 못하는 것이었다. 결론은 이거다. 그렇게 죽느네 마네, 하네 마네, 놓네 품네 하지말고, 열심히 하나라도 잘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아니면 언어는 잠시 미루고 새로운 시각으로 낯선 세상을 보려 노력하라는 것이다.
말해 뭐해? 지금 유독 책장의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이란 류시화의 잠언집이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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