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OICA - 우즈벡(Oh! z Bek)/난 빨따리로 가련다

아! 독재주의십니까?

아! 독재주의십니까?

 

40분째 경찰 영화에서나 보았던 취조실에 앉아 있는 중이다. 노랑 전구 하나의 불빛으로 겨우 맞은편 경찰의 얼굴을 가늠할 수 있었고, 뭐라고 나에게 물어보는 데 도대체 이게 러시아어인지, 우즈벡어인지, 아니면 영어인지 분간이 어려워진다. 첫 질문에 러시아어로 외워둔 '나는 한국어선생이고 너네 나라를 위해 봉사활동 중이다'라고 호기롭게 말했지만, 회화 실력의 밑천은 진즉 떨어지고 점차 위축이 되었다. 과연 여기서 나갈 수나 있을까, 지하철을 타려고 했을 뿐인데 도대체 왜 지하철 으슥한 곳까지 날 데려온 이유가 무엇일까, 대사관 소속의 관용여권 사본을 보여줘도 막무가내인데 차라리 돈을 줄까 등 오만가지 생각에 두려움 커졌다. 그 순간, 맞은편 경찰이 자꾸 책상 밑 종이를 힐끔힐끔 보고 질문을 하였다. '왓 이즈 유얼 페이브릿 컬러?'. 아! 이 오이*가 정말!.

 

우즈베키스탄 공항에 입국 수속을 밟는 순간부터 잠시 남아 잊고 있던, 이 나라가 독재국가란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을 수 있었다. 움직이는 게 신기한 낡은 공항 컨테이너 벨트 앞에서 짐을 기다릴 때였다. 신기한 이 공항 광경을 찍기 위해 사진기를 꺼낸 순간, 여기저기서 경찰들이 딱 걸렸다는 표정으로 달려오더니 사진기를 압수하려고 하였다. 봉사단 일행을 기다리던 운영요원이 나타나 겨우 설득하여 사진기를 돌려 받았다. 알고 보니 공항은 물론, 우즈베키스탄에서 사진을 찍을 수 없는 곳이 수없이 많았다.  동료 봉사단원은 아침 산책길 광경을 사진 찍다가 경찰서에 불려가 신원조사를 받았다.

 

1990년대 초 러시아 연방으로부터 독립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은 단 한 차례도 바뀐적 이 없다. 횡당보도를 건너다가 두 번 정도 대통령의 출근을 본 적이 있다. 일단 교통통제가 시작되고, 요란한 싸이렌카 소리가 들려온다. 경찰 오토바이 몇 대가 쏜살같이 지나가기 무섭게 다섯 대의 검은 세단이 V 라인을 유지하며 눈 앞에 사라진다. 혹시나 모를 저격 및 테러를 대비하기 위해 대통령이 탄 차를 숨기는 것이라 하였다. 이 의식이 대통령 출퇴근을 위해 하루 2번 진행된다. 우즈베키스탄 사람들 누구도 이런 것에 아무런 불평이 없다. 대통령 선거는 있지만 항상 지금의 대통령을 찍는다. 궁금해서 한 번 아는 우즈베키스탄 사람에게 물어봤다. 다른 사람들을 도통 믿을 수 없으니 그냥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현 대통령에게 표를 준다고 한다.

 

독재주의는 폐쇄 그 자체였다. 일단 이사하자마자 경찰들이 수시로 찾아왔다. 역시 투표에 대해 물어봤던 현지인에게 물어봤다. 주변 이웃들이 외국인에 대한 경계로서 신고가 끊이지 않는 것이라 했다. 그래서 우즈베키스탄에 3일이상 머무를 경우 반드시 거주등록이란 것을 해야한다.(이건 러시아 여행의 경우도 똑같다.) 세상에서 가장 재미없는 방송이 우즈베키스탄 방송이란 말이 있다. 하루 종일 대통령 칭찬만 나온다. 목화 방학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이 독재주의 국가에서의 사회제도다. 목화가 필 가을 무렵, 수도를 빼고 전국에서 성인 인력(대학교수 포함)이 목화를 따러 강제 소집된다. 이 소집에 불응하면 커다란 보복조치가 있다. 각종 교육기관은 당연히 방학이다. 하루 종일 일을 시키고 목화 농장 주인은 멀건 죽과 최소한의 푼돈을 준다고 한다. 컨테이너 박스에 10명 이상 성인들을 자게 해서 공공연히 성범죄가 만연하다 하였다.

 

이 독재국가의 지하 독방에서 기껏해야 '당신이 좋아하는 색은 무엇입니까?'를 진술하게 될 줄이야. '빨강색'이라 왠지 분위기가 좋지 않게 될 거 같아 오이색과 같은 초록색이라 답하였다. 순간 책상 한 켠에 놓여있던 유선 전화기가 울렸고, 경찰은 전화를 받았다.(꼭 80년에 전화기처럼 보였는데 장식품이 아니었다.) 경찰은 갑자기 손을 내밀더니 악수를 청했다. 내 여권 번호가 확인되었다고 한 것 같았다. 너무 지쳐서 이 나라가 내 여권번호도 식별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다는 데 감사했다. 지하철을 탈출하며 내내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의 얼굴을 살폈다. '과연 이 나라에 사는 게 이 사람들은 행복할까.'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생각할 수도 참견할 수도 없는 일이라고 느껴졌다.

 

훗날 이 독방탈출 실화는 다음과 같이 활용되었다. 동료 봉사단원들에게는 지하철을 얼씬도 안 하게 되는 무용담으로, 자기소개서에는 위기를 탈출한 사례로, 지금은 우즈베키스탄에 챙겨온 추억거리가 되었다. 가끔 길거리에서 사진을 찍을 때, 우즈베키스탄의 정신적 외상으로서 주변을 먼저 조심히 살피게 된다. 그럴 때마다 우즈베키스탄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아! 독재주의십니까?'

 

 

 

 

* '오이'란 우즈벡 경찰들은 초록색 옷을 입고 하루종일 할일 없이 주요 장소입구에 서 있는 것을 비꼬는 현지인들의 은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