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의 빈자리
벌써 세 번째였다. 다시 성찰의 몸이 저 멀리 떨어진 비행기 내 화장실을 가야한다고 외치는 신호를 들은 것이. 비행기에 좌석에 앉은 순간부터 속이 뒤집어지더니 화장실을 가야한다는 신호음이 머릿 속에 울렸다. 이는 비행기 긴급상황 대처 요령 메뉴얼도 없는 위급 상황이었다. 문제는 성찰의 비행 좌석이 맨 창가였다는 점(회사의 쫌스러운 항공 규정에 따라 좌석이 좁디 좁은 베트남 여객기 VN658임은 접어두고), 거기에 이웃 복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옆자리가 비었다는 쾌재를 부를 쯤, 옆에는 덩치가 미 프로레슬링 WWF에서 나왔을 근육질 흑인 남성 2명이 함께 앉았다. 그 순간부터다. 성찰의 배가 이상하게 아파왔다.(호찌민 공항에서 먹은 매운 꼼냥국이 문제였던 것 같다.) 두 명 모두 힙합 듀오 같게 일자창 모자를 비스듬이 썼고 목에는 금색 스뎅을 걸쳤다. 흉부는 어미 돼지 마냥 가슴이 쳐졌고, 배 또한 지방층을 심하게 출렁거렸다. 차마 반바지가 가릴 수 없는 종아리 영역에는 피부 보다 검은 털이 수북하였다. 흑인 한 명이 자리에 앉자 마자 성찰의 오른쪽 팔걸이 부분을 침공했다. 어떠한 반항도 없이 성찰은 오른팔을 옆으로 내릴 수 밖에 없었다.
이륙 뒤 비행기가 막 성층권에 도달하자마자 본격적인 첫번째 신호가 왔다. 성찰은 '익스큐즈미'를 연발하여 그들에게 자리를 비켜줄 것을 요구했다. 두 흑인 남자 중 가운데 남자가 뭐라 궁시렁거렸지만 그냥 넘어갔다. '니들은 오늘 똥한번도 안 쌌냐' 라 속으로 욕하며 기내 화장실로 달려가다시피 뛰었다. 일을 보고 돌아와서도 창가 자리를 들어가기 위해 다시 '익스큐즈미'를 연발하며 겨우 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기내식을 먹은 뒤 두 번째 신호가 왔고, 성찰은 베시시 웃으며 또 다시 '익스큐즈미'를 연발할 수 밖에 없었다. 두 흑인은 오 맨이니 뭐니 했지만 성찰은 배가 너무 아파 무시할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은 기내 도시락을 한 손에 들고, 다른 한 손으로 간이 식사 받침대를 접은 뒤 성찰을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물론 성찰이 화장실을 갔다 온 다음 반복 1회가 이어졌다.
문제는 새벽 비행편의 취침시간에 벌어졌다. 다시 성찰의 배는 큰창자가 작은 창자를 움켜잡고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흑인 2명은 모두 잠을 자고 있었다. 그들을 깨우지 않으면 화장실은 요원하였다. 흑인 두 명은 완벽히 좁은 통로를 틀어 막고 있었다. 고민의 순간, 무엇가 찔끔거리며 팬티를 적신 것 같았다. 삼세 번이라 하지 않나. 성찰은 용기를 내어 가운데 흑인을 흔들어 깨웠다.
"헤..이.. 유.. 익스큐즈..미.."
순간 어둠 속에서 핏빛 눈동자만 덩그러니 보이더니
"왓 더 뻑 맨!" 이라 고함을 쳤다.
순간 비행기 안의 사람들이 깨어났지만, 성찰은 그게 대수가 아니었다. 뭔가 또 찔끔찔끔 거리는 이물질이 팬티의 절반을 잠식하는 게 느껴졌다. 성찰은 발을 높이 들어 옆자리 흑인이 앉아 있는 다리 가운데를 찔러 넣었다. 남자만 아는 그 고통의 소리가 비행기에 퍼저 나갈 쯤, 성찰은 화장실로 가는 관문을 지키는 마지막 수문장 흑인에게는 주먹으로 같은 방식 만행을 저질렀다.
두 흑인을 밀치고 화장실로 뛰어간 동시에 바지와 팬티를 내리자 자동적으로 거사가 진행되었다. 눈동자가 풀리며 안식이 찾아올 때 쯤, 문이 마치 부서지기 일보 직전처럼 흔들렸다. 힙합 듀오는 라임을 타며 번갈아 문에 몸을 부딪쳤다.
"오픈 더 도어! 오픈 더 도어! 아이 킬 유!"
성찰은 거사를 마무리도 못한 채 엉덩이를 살짝 들고, 문이 열리지 못하도록 손으로 죽어라 밀려 '썸바이 헬미 노바이 원츄'를 외쳐될 수 밖에 없었다.
그 때다. 두 흑인의 짧은 외마디 비명 소리가 들리고 천상의 스튜어디스 목소리가 들린 것이. 뭔가 괜찮다고 나오라는 소리에 성찰은 젖은 팬티를 쓰레기통에 몰래 처박은 뒤 문을 빼꼼히 열었다. 밖에는 스튜어디스 외 많은 사람들이 그를 쳐다보며 괜찮다는 사인을 보냈다. 고개를 돌려 보니, 이름 모를 사람들이 흑인들을 비행기 뒤칸으로 질질 끌고 가는데 그들의 입에는 청테이프가 이미 붙여 있었다.
뭐 어찌되었건 성찰은 풀린 다리로 겨우 걸어 창가 좌석으로 돌아왔다. 스튜어디스가 건네 준 물에 목을 축이며 흑인들이 앉아 있던 옆자리를 처다 보았다. 그 빈자리들이 주는 공허함이 몰려와 성찰은 잠을 자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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