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죽일 놈의 영어 공부
아침 8시 10분, 어김없이 전화영어 Tomas 선생님의 전화가 걸려왔다. 잘 지냈냐는 인사로 시작해 오늘의 기분은 어떠냐로 물어보신 다음 교재를 피라고 하신다. 전화영어 때문에 출근도 못하고 길거리에서 책을 폈다. 출근은 어서 해야겠고, 오늘따라 10분의 수업이 점점 넘어가고 있었다. 미국은 늦은 시간이니 어서 쉬시라고 인사한 다음 출근길을 제촉했다. 출근 후 확인한 강사 코멘트는 오늘도 잘했다는 인사 뿐이지만, 정작 내 영어 실력이 늘고 있는가에서는 회의적이었다. 회사가 한 달 무료로 해 기간이 만료가 되었는데 또 신청해야 하나 고민이 크다. 도대체 이 영어가 뭐라고.
중학교 때까지는 전교에서 손꼽힐 정도로 영어를 잘했던 것 같다. 일단 지역에서 영어 학습으로 가장 악명 높았던 학원에 영어부장이었다. 고1까지는 별다른 영어에 어려움이 없었다. 자만했는지 그 벌은 고3때부터 톡톡히 받았다. 그 후 대학에 들어가서 영어를 손 놓았다. 취업에 관심도 없었고 영어를 마땅히 써 먹을 곳도 없었다. 그러던 차 점차 토익의 압박을 느껴, 드디어 대학교 4학년 때 소규모의 토익 학원에 다닌 게 전부였다. 남들은 토익학원만 가면 점수가 오른다던데 나만 제외였던 것 같다.
그 후, 원하는 공공기관의 입사를 위해 죽어라 영어작문과 독해를 따로 공부는 했었다. 행운이 하늘에 닿아 필기시험은 통과하였지만 내 영어실력이 일취월장 늘어난 것은 아니었다. 입사에는 실패를 했고, 다시 토익 점수가 필요했다. 그러나 점수는 번번히 목표 점수보다 한참이나 아래였다. 토익은 나를 버린 것인지 내가 공부를 안 한 것인지 자괴감이 말이 아니었다. 매번 입사의 문을 두들일 때마다 토익이 발목을 잡는 것 같았다. 토익은 접고 스피킹 쪽으로 방향을 돌렸으나 이도 시원치 않았다.
직장을 얻은 뒤 영어에 대한 한을 풀고자 갖은 방법을 동원했다. EBS 원서 읽기 유명강사의 오프라인 수업을 신청했다. 영어원서를 술술 읽을 수 있다고 했다. 오프라인 수업을 듣고 나중에는 수강생들끼리 온라인 모임을 만들었다. 초등학교 수준의 책을 읽고 읽은 분량을 녹음해서 카페에 올리는 것이었다. 토,일을 빼고는 주 5일을 녹음하고 해당 분량을 사이트에 게재해야했다. 1년 반 가까이 하고 있지만 실력은 그대로다. 오히려 좌절만 줬다. 3주간 거의 과제를 안 내고 있다. 영어를 하려면 말을 해야 할 것 같아 비영리 NGO 영어 모임에도 가입하기도 하고, 다시 토익책을 기웃거렸다. 요즘은 전화 영어로 활로를 찾았으나 이것도 아닌 것 같다.
영어 공부를 손 놓고 있는 나날들이 길어지고 있다. 마음은 편해졌다. 그 대신 글쓰고 있으니 문제는 아니라고 합리화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시민의 꿈, 영어를 통한 다양한 정보에의 접근하고자 하는 바람 또한 멀어지고 있는 것 같다. 나태해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올해도 이렇게 영어에 대한 꿈을 접고 있는 것 같아 속상하기도 하다. 이 죽일 놈의 영어 공부를 어찌해야하나. 내일부터는 일년의 절반이 시작된다. 한 해 가장 큰 목표였던 영어공부. 밥심으로 전진이나, 편안한 안식의 포기인가 그것이 알고 싶다.(김상중이 알려 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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