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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의 키가 작아질수록/생각을 모음과 자음의 만남으로

[30일 글쓰기 - 19] 눈과 비의 추억

 

눈사람

 

마당의 눈으로 눈사람을 다 만들었을 때를 기억한다. 내가 그동안 텔레비전과 책에서 보았던 눈사람과 너무 달라서 당혹해 했던 거 같다.

신경을 집중해서 눈을 조심히 굴렀는데 그것은 동그란 형태와 너무 달랐다. 눈사람은 크기가 다른 동그라미 두개가 합쳐져야 했는데, 내 눈사람의 몸과 얼굴은 울퉁불퉁하고 각이져서 예쁘지가 않았다. 뭐, 이건 기술적인 문제라 치더라도 나를 절방하게 했던 건 따로 있었다. 눈사람이 순백의 하얀색이 아니었다. 쌀밥처럼 하얀 눈으로만 만들었는데, 마당 바닥의 흙과 합쳐져서 그랬는지 눈사람은 곳곳에 황토색의 얼룩이 보였다.

 

내가 보아왔던 동그랗고 순백의 눈사람을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그것은 산타할아버지가 이 세상에는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과 비슷한 강도였다. 섭섭하지만, 그렇다고 크게 아쉽지는 않았던 거 같다. 그냥, '어떻게 눈으로 사람을 만들어' 정도였던 거 같다. 그렇게 즐겁고, 신기했고, 이유없이 마냥 설렘을 주었던 것들이 커가면서 하나씩 사라졌다. 그렇게 어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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