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리의 소중함
곰씨는 다른 사람들에게 착하고 친절한 사람이다. 타인의 걱정에 경청을 해 주고, 몸과 마음의 쉼터를 제공해주며, 그들의 기쁨을 자신의 일 마냥 함께 기뻐해 주는, 그런 착하고 친절한 사람이다(아..곰이시구나). 그런데 점점 그 모습을 지키기 위해 정작 자신이 좋아하는 의자에 앉아 있을 시간이 없어졌다. 그 소중한 자신만의 공간에 자꾸 그가 친절히 대해줬던 이들이 침범했다. 점점 그의 의자에서 차를 마시고, 명상을 하기가 힘들어졌지만 그래도 그는 남에게 착한 사람으로 남고 싶어 말할 수 없었다. 결국 마음의 병을 얻고서 겨우 그 사실을 주변에 털어 놓을 수 있었다. 그것 또한 너무나 힘들고 피곤했지만 말이다.
나도 곰씨처럼 주변에게 착한 사람처럼 보이는 걸 중시했고, 지금도 똑같다. 나 보다는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여길지를 먼저 걱정한다. 그래서 항상 착하고 친절한 사람으로 여겨졌다. 초등학교 때는 숙제도 잘 도와줬고(생각해보니 그냥 해줬구나), 중고등학교 시험 기간에는 요점 정리 노트를 나눠주기도 하였다. 개인 공부를 위해 그런 것을 만드는 게 아니라, 친구들에게 주었을 때 그들의 칭찬을 기대했었다. 약속을 정할 때도, 음식을 고를 때도 내 의견 보다는 주변 사람들을 의사에 동조하고 따른다. 이타적이고 때로는 희생을 아는 사람이라 인정받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나의 행복과 안락함은 후순위가 되었다.
어제 일이다. 상사와 대화 중에 이건 아니다 싶어 화가 끓어 올랐다. '그건 좀 제가 아니라 그쪽에서 해 주시는 일이 맞는 것 같습니다.' 라고 사내 메신저를 보냈다. 워낙 순식간의 일이었다. 순간 큰 실수를 한 게 아닌가 스스로 깜짝 놀랐다. 그런데 막상 상사가 더 놀랐던 거 같다. 화를 내기는 커녕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서 이야기 해 주겠다고 했다. 작은 한숨 소리를 들었는지 옆에 있던 팀장님놀리는 소리가 들려 왔다. 분명하게 그냥 할 말만 했으면 되었지, 그것도 말하지 못해 또 끙끙 앓고 있는 거 아니냐는 핀잔이셨다. 제 속을 또 들켰다고 팀장님 말씀이 다 맞다고 하였다. 속으로는 나도 방금 크게 꿈틀거렸다며 웃고 있었지만 말이다.
얼마 전 회사의 다면평가 결과가 통보가 되었다. 점수가 역대급으로 낮았다. 항상 직급 평균을 크게 상회했는데 최초로 직급 평균과 똑같았다. 즉, 주변의 평가가 박해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오히려 기분은 좋았다. 이제 내 마음의 의자에는 다른 사람을 앉히려 배려하기 보다는 그것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반증으로 생각했다. 물론, 내 작은 도움이 그들에게 큰 힘과 격려가 될 수 있다면 그 또한 큰 기쁨이다. 다만, 나는 불행한 상태로 타인에게 베푸려는 배려는 가식이다. 그들에게 착한 내가 되기 위해, 정작 나는 나에게 고통과 불행을 주는 자기 기만이다.
곰씨는 나였다. 사람이 변한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힘겹게 자신의 의자, 자신의 공간, 자신의 마음부터 돌보겠다는 곰씨 선언을 한 것에 축하의 말을 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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