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두부
베트남에서 하루에 한 번은 비를 맞이하는 것 같다.(오토바이를 타던 사람들은 순식간에 우의로 환복을 한다) 저녁에 비를 흠뻑 맞고 집으로 돌아갈 때면, 으레 막걸리 한 잔이 생각나고 오늘도 그것에 따랐다.
안주는 생김치와 두부 뿐이지만, 역시나 아삭한 김치와 생두부는 막걸리를 함께 마시기에는 더없이 좋은 친구라 생각되었다. 베트남에서 이러한 것들을 사 먹을 수 있는 환경에도 감사해야 하지 않겠나. 또한 태생적(?)으로 두부를 좋아한다. 차가운 두부 한 점을 집어 넣을 때 문득 할머니가 직접 만들어 주셨던 따뜻한 두부 한 모가 생각이 났다.
할머니는 콩을 멧돌로 갈아서 가마솥에 넣어 직접 두부를 만드셨다. 가끔 학교에 갔다 돌아와 대문을 열면 할머니는 작은 마당에서 동네 할머니 몇분과 함께 두부를 직접 만들고 계셨다. 그런 날은 항상 커다란 그릇에 따뜻한 두부와 두부물이 식탁에 올라 왔고, 난 간장에 숟가락에 묻힌 뒤 두부를 썰어 먹었다. 시간이 흘러 할머니도 점점 두부를 만드는 일에는 힘에 부치셨다보다. 하루는 나를 불러 두부를 만드는 작업을 도와 달라 하였으나 정말 귀찮고 이제는 사먹도 되지 않나 싶어 건성으로 했다. 할머니는 성화만 내시며 하기 싫으면 하지 말라고 하셨다. 난 부엌문을 닫고 안방으로 들어왔다. 그 때 그 두부는 아마 잘 완성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차가운 두부를 먹으며 할머니의 따뜻한 두부가 생각났던 것은 아마 내 몸에 할머니가 손주에게 전해주고 싶었던 정감있는 온기였을 것 같다. 이제는 치매 때문에 나를 알아보지 못하시는 할머니기에 그 따뜻했던 두부는 영원히 먹을 수 없는 세상의 음식이 되었다. 그것이 문득, 너무나 슬펐다. 시간이 야속했다. 지금에서야 그것을 알게 된 나 또한 어리석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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