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잘 몰랐다. 프로듀스 101의 pick me 를 듣는 순간 대관령의 양떼들이 돌아다니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아래 글을 읽고 보니 이 노래가 더 없이 슬퍼졌다.
"우리는 꿈을 꾸는 소녀들" -> 여기까지 왠지 애처롭지만 좋다
"너와 나 꿈을 나누는 이 순간" -> 더 애절퍼 지지만 괜찮다.
그.런.데.
상기 사항을 위해서는
pick me...
나를 뽑아줘야 한다는 이야기...
내가 뽑혀야 내 꿈이 이뤄질 수 있다는 이야기..
그러니 제발 날 좀 뽑아달라는 이야기...
아.. 너무 슬픈 노래
특별히 계약직 직원으로서 계약직 아이돌 탄생에 반대하노라..
하기야 모든 걸그룹이 계약직이거늘..
<프로듀스 101>이라는 케이블 프로그램이 방영중이다. 한국의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기획사에 소속되어 있는 연습생 101명이 기획사 이름을 달고 출연해 최종 11명으로 구성되는 ‘국가대표 걸그룹’의 멤버가 되기 위해 피나는 연습을 하고, 매주 국민투표를 통해 탈락자를 가려 최종 멤버를 결정하게 된다는 포맷이다. 어찌 보면 또 하나의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탄생이지만, 이 프로그램은 뭔가 다르다.
가장 다른 점은 출연자들이 ‘연습생’ 신분이라는 점이다. 몇 달 전에 연습생이 된 사람부터 10년 동안 연습생 생활을 한 사람에 이르기까지 포진해 있고, 이 연습생 101명의 연습기간을 모두 합치면 270년이 넘는다.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들의 출연 대상이 ‘국민 전체’임에 비춰볼 때, ‘연습생’만을 대상으로 했다는 점은 이들의 재능과 기량이 기본은 된다는 점을 전제하게 한다. 실제로 이들은 모이자마자 ‘픽 미 업’이라는 노래를 완성하고 뮤직비디오를 찍었다. 이 프로그램의 ‘합리성’은 연습기간의 길이와는 상관없이 오직 ‘재능’에 따라서만 ‘선택’(픽업)된다는 데 있다.
또 다른 점은 출연자들이 모두 ‘어린 여자’라는 데 있다. ‘국가대표 걸그룹’을 뽑기 위한 프로그램이니 당연하다. 대부분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이라, 스물다섯 살의 출연자는 ‘늙어’ 보일 정도다. 101명의 어린 소녀들이 모여 똑같은 옷을 입고 춤추고 노래하는 장면을 지켜보는 것은 상쾌함과 발랄함을 넘어 기괴한 느낌까지 준다. 이들에 대한 요구는 대한민국이 무대를 갈구하는 ‘어린 소녀’들에게 요구하는 것들이다. 예쁘고, 재능 있고, 섹시하고, 게다가 착해야 한다! 그것은 나아가 취준생 여성들에게 회사가 절대적으로 요구하는 것이며, 이는 궁극적으로 한국 남성의 요구이기도 하다.
‘어린 소녀’들이 백 명씩 나와, 재능에 의해 철저하게 등급을 부여받으며 연습하고, 섹시한 끼를 발산하고, 이들의 모습을 보며 ‘국민 프로듀서’라 호명되는 시청자가 투표를 하여 생사를 결정하는 이 프로그램의 포맷은 남성/강자의 시선을 내면화한 한국 ‘사회’에서 여성/약자들이 생존하는 방식의 알레고리다. 약자들은 강자를 향해 미소지어야 하고, 끼를 부려야 하고, 재능이 있음을 보여야 하고, 살아남을 의지가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여기서 로마의 콜로세움에서 관객의 반응에 살고 죽는 검투사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이 그다지 과도해 보이지는 않는다.
우리에게 익숙한 이 잔인한 생존게임의 피비린내를 덮는 향수는 ‘꿈’과 ‘열정’이라는, ‘헬조선’에서 더없이 천박해지고 너덜너덜해진 단어다. ‘꿈 때문에 힘들게 한다’고 울먹이던 소녀들은 “우리는 꿈을 꾸는 소녀들, 너와 나 꿈을 나눌 이 순간”이라고 노래한다. 그런데 이 꿈은 나 혼자 잘 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국민의 ‘선택’(픽 미, 픽 미, 픽 미 업!)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2002년에 한국인이 ‘꿈은 이루어진다!’고 소리쳤다면 2016년에 한국인은 ‘꿈은 생존을 위한 무기다!’라고 소리지른다. 문제는 꿈을 향해 잔인함을 감내하는 어린 소녀들의 모습이 결국 우리 모두의 모습이라는 데 있다. 소녀들의 모습을 즐기며 이들의 운명을 결정하는 ‘국민 프로듀서’는 다음날 아침이면 다시 콜로세움에 나가 다른 갑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 내 모든 에너지를 불살라야 한다. 그 피곤함이 밤에 다시 이 소녀들의 미소를 찾게 만드는 동기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프로듀스 101>은 걸그룹을 뽑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생사의 갈림길이 일상인 한국인의 삶의 방식에 대한 개론서에 더 가까워 보인다.
문강형준 문화평론가
'연필의 키가 작아질수록 > 생각을 모음과 자음의 만남으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전 유머 (0) | 2016.03.06 |
---|---|
운동합세 (0) | 2016.03.06 |
솔로에게 커피 쿠폰 (0) | 2016.02.28 |
나침반의 가려린 모습 (0) | 2016.02.28 |
우리가 기획서나 보고서를 쓰는 이유 (0) | 2016.02.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