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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의 키가 작아질수록/생각을 모음과 자음의 만남으로

아무도 내게 관심이 없었다

아무도 내게 관심이 없었다.


만득이인가.  안 읽어 봤지만 그런 내용이 있다고 알고 있다. 양아치 제자에게 선생은 곰 인형을 쓰고 돌아다니라 했다. 가오 아니면 죽음을 외치는 이 제자는 결국 그렇게 해 봤다. 생각과는 달리 그를 알아보지 못하는 이들이 대다수였다. 즉, 그 제자에게 관심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스승은 말한다. 세상은 너에게 관심이 없다고. 그것은 너의 착각이었다고 한다.


지난 금요일 바지가 또 뜯어졌다. 이번에는 오른쪽 허벅지 라인이 절반이상 날라갔다. 영상 촬영 준비를 위해 모니터 선을 뽑으려 책상 밑에 기어들어 간 순간 '찍'하고 공포의 소리를 내며 허벅지 속살이 훤히 들어났다. 예전에는 엉덩이 부분이 찢어져 결국 바지를 사러 갔던 그 아픈 트라우마가 떠올랐다. 영상도 찍어야 하고, 일은 많고, 시간은 없고 땀이 삐질삐질 났다.


응급처치로 스탬플러를 찢어진 바지를 부여잡고 박아 대었다. 나름 잘 박혔다. 문제는 허벅지가 가장 튼실한 부분은 계속 찍찍소리를 내며 뜯어져 나간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무릎 부분은 나름 스탬플러 심으로 버티었다. 남들이 보면 바지 한쪽이 스탬플러가 박힌 모습이 이상하게 보일 것이었다. 그러나 내가 미리 자수를 한 과장님을 빼고, 이를 알아본 직원은 오후 10시까지 단 1명이었다. 


내가 가만히 앉아 있었을까. 전혀 아니다. 점심도 좌식에서 먹어 바지가 뜯기는 소리가 들렸다. 아침부터 여기저기 불려다니고 자리에 있을 시간도 많지 않았다. 그러나 내 바지가 찢어진 것을, 스탬플러가 잔뜩 박힌 것을 모두들 몰랐다. 나에게 관심이 없던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다들 모른척 해 줄리는 없지 않은가.


이 일로 솔직히 좀 놀랐지만 기분은 좋았다. 나에 대한 관심이 적다는 것은 내 일만 열심히 집중하면 될 환경이라는 것이라 생각되었다. 오히려 내가 이 조직에서 뭔가 있어 보이는 사람일 것이라는 큰 착각 또한 들지 않도록 도와주었다. 아무도 내게 관심이 없었다. 


참고로 날라간 바지 덕분에 새로운 바지 2벌을 새로 샀다. 스판 기능이 너무 훌륭하여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할 싹수를 아예 잘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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