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별 고유번호, 스타일
코코샤넬아 말했다(고 들었다). 여자가 남자를 만날 때 주의점이라 말했지만, 실제 남자들에게 조언을 한 말이라고 한다. 여자를 만나러 갔을 때, 옷만 기억이 되는 사람이라면 만나지 말라는 것이다. 옷은 인물을 받쳐 주는 최고의 배경이지만 주인보다 드러나면 안 된다고 하였다. 다시 말하면, 옷만 드러나는 사람은 개인의 스타일, 고유한 개성이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패션 큐레이터 김홍기씨는 패션 보다는 스타일을 가꾸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패션계에서는 패션은 구매하는 것이지만, 스타일은 소유하는 것이라는 명제가 있는데 그는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하였다. 패션은 다양한 옷들을 옷가게에서 사면서 충족시킬 수 있지만, 스타일이란 것은 옷을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스타일이란 옷 뿐만이 아니라 내가 사람을 어디서 만나, 어떤 말을 하고, 예의를 표하는 것 등이 섞여 있는 것인데, 이는 한 사람이 평생을 놓고 만들어 가야하는 점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김홍기 씨의 패션 철학 중 가슴에 와 닿는 부분은 두 가지였는데, 첫째가 옷장에 대한 부분이었다. 스타일은 옷장에서 찾을 수 있는데, 옷장을 보면 사람의 심리, 마음의 상태를 엿볼 수 있다고 하였다. 멋쟁이가 되려면 개별 옷이 아닌, '옷장에 어떤 핵심적인 옷을 채울 것인가, 그것을 긴 시간동안 입을 것인가' 하는 태도를 강조하였다. 고민, 선별, 심혈을 기울여서 자신의 옷장을 하나하나씩 채워나갈 때, 패션을 클래식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게 뇌리에 남았다.
두 번째는 스타일을 일지에 비유한 부분이다. 스타일은 내가 어떻게 옷을 입고, 어떻게 의사결정을 했는지를 매일매일 기록해 가면서 만들어 가는 하나의 일지 같은 것이라 하였다. 내가 이 옷을 입고 누구를 만날 것인지, 무슨 일을 할 건지, 그리고 어떤 일을 앞두고 무슨 옷을 입었을 때 어떤 기대감을 정리해 보라고 하였다. 그것이 차곡차곡 모아서, (궁극적으로) 내가 하루하루를 어떻게 느끼고 체험해야 할 것인지 답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을 때 옷을 잘 입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하였다.
스타일이란 결국 개인별로 갖는 고유한 정서, 식별번호와 같은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봄 초입 무렵이었다. 매일 입던 셔츠에 정장 겉옷을 걸치고 갔을 때, 회사 사람들은 소개팅이 있냐며 난리법석을 피웠다. 그 정도로 옷 입는 것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작업복에는 투자하지 않는다는 기조 아래, 가끔 야외행사에 편안한 차림으로 가면 훨씬 어려보이고 생기있어 보인다는 말을 들을 정도다. 그 동안 나만의 스타일을 가꾸는 것에 무심했던 것이 사실이다. 스타일을 가꾸는 것에는 옷 한 벌을 옷장에 채우는 데도 고심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오늘 입는 옷에 대한 이유와 기대감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평생을 도전해야 한다는 말이 너무 마음에 든다.
그럼, 간만에 인터넷 쇼핑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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