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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의 키가 작아질수록/생각을 모음과 자음의 만남으로

바보야, 문제는 방향이야

 바보야, 문제는 방향이야

 

 어쩌다 스쿼시를 배우고 있다. 야근 대신 하고 싶은 것도 있었고, 취미란 것도 하나 추가하고 싶었다. 우즈베키스탄에서는 테니스를 배웠다. 오른손을 올렸다가 내려치는 '포핸드 샷'을 무의식에 하는 것을 보니 아직 몸은 테니스를 잊지 않은 것 같았다. 회사 동료가 같이 하자고 해서 시작했다. 지금은 나만 배우게 되었지만 말이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솔직히 강사님이 가르치시는 건 별로 없다. 차라리 옆 코드에서 강사의 신분을 망각하고 다른 사람들과 게임을 뛰는 모습이 더 큰 가르침으로 다가온다. 강사님도 가르치는 것 보다는 같은 시간대끼리 사람들과 약식게임을 뛰라고 한다. 그게 더 재미있어 마냥 땡큐다.

 

 문제는, 그렇게 약식 게임을 뛰는 상대들이 대개 목숨걸로 나를 이기려 한다는 것이다. 세 명이 함께 하는 때도 있지만, 그 중에 꼭 한 명은 목숨 걸로 치는 사람이 있다. 경기를 시작 전에 다짐을 한다. '목숨 걸고 하지 말자, 스윙 자세를 익히자'라 속으로 중얼거리며 허공에 라켓을 휘둘러 본다. 스쿼시 코트에는 나와 상대방만 있다. 오늘 처음 본 사람이다.(난 항상 9시에 나왔는데....) 시작하라고 서브권을 나에게 준다. '시작하겠습니다.'라 예고를 하고 서브를 줬다. 공을 받자마자 온 힘을 다해 후려쳤고, 공은 내 생각보다 광속의 빛으로 지나갔다. 허무하게 1점을 내줬다. 허무함은 잠시, 생각을 고쳐 먹고 라켓을 움켜준다. 선전포고를 받아들이며 전쟁의 시작을 의미한다.

 

 그가 친 공이 왔다. 있는 힘껏 후려친다. 벽에 맞은 공은 '펑' 소리를 내며 튕겨 나와 상대에게 향한다. 상대도 당황했는지 헛스윙을 꼴사납게 했다. 고개를 갸웃뚱 하더니 공을 내게 준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서브를 줬으니 이번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서브를 해야한다. 오른손잡이에게는 좀 힘들다. 어찌됐든 서브는 들어갔다. 왼쪽 백핸드 코스여서 상대는 또 헛스윙을 했다. 한 번 기세가 타면 아마추어들이라 점수가 쭉 올라간다. 긴장을 풀어서인가. 상대방이 친 공이 너무 좋은 코스로 와서 잔뜩 힘을 줬다. '죽어봐라' 심정으로 너무 힘껏 휘둘러서인지 공이 천장에 맞았다. 아웃이며 실점이다. 이번엔 상대차례다. 또 죽어라 공을 세게 친다. 발이 못 따라갔다. 왠지 상대 표정도 좋아진 것 같다. 그렇게 죽어라 힘만 들여 공을 친다.

 

 팔뚝의 살은 터질듯하고, 마그마와 같은 뜨거운 입깁이 속에서 뿜어 나온다. 이래서 스쿼시가 격한 운동이라 실감은 하지만 어느 쪽도 잠깐 쉬웠다 하자는 말은 안 한다. 자존심의 싸움이다. 그런데 게임에서 신기한 점이 있다. 서로 점수를 내주는 경우는 빠른 공을 못 쳐서가 아니라 대개 힘줘서 치려고 헛스윙을 하는 경우였다. 스쿼시 경기는 코트의 정중앙을 차지해야 움직임도 적고 게임을 유리하게 이끌 수 있다. 이 지점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상대를 움직이게 해야하고, 그것의 최고 방법은 구석의 벽쪽으로 공을 향하게 해야 한다. 아무리 세게 쳐도 공이 중앙으로 튕겨 나오면 헛수고인 것이다.

 

 문제는 힘이 아니라 방향이었다. 자존심 싸움에 서로 힘들어 할 뿐 정작 둘의 렐리 수는 많아야 다섯 번을 넘기지 못하고 뚝뚝 끊어졌다. 연습이 의미를 찾을 수 없었다. 메이저리그에서도 처음에는 강속구 투수가 이름을 날리지만 결국에는 기교파 투수가 살아 남는다고 하였다. 힘자랑은 이제 그만 접고 기본에서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강한 사람이 오래 치는 게 아니라 오래 치는 사람이 강한 게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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