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연필의 키가 작아질수록/생각을 모음과 자음의 만남으로

달의 후예

 달의 후예

 

 요즘 들어 태양의 후예니 선조니 드라마의 송중기 때문에 성찰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은근 송중기와 자신을 비교하는 여자 동료들 때문이었다. 어제 총알에 맞았네, 아팠겠네, 죽었네, 재수없는 소리하네, 그래도 만약 죽으면 우리 오빠 어쩌네 하는 이야기들 뿐이었다. 한번은 마지막 예비군 훈련을 받으러 간 성찰에게 여자 부장은 총 들어 송중기랑 비슷한 분위기 연출 사진을 요구했다. 이미 몇몇 예비군들 사이에서도 셀카를 찍으며 카톡을 보내느라 난리였다. 마지 못해 '옆에 총' 자세로 사진을 보내니, 단톡방에서는 송중기를 찬양하며 성찰을 성토하는 글들로 도배가 되었다. 그렇게 알게 모르게 성찰의 마음 속에서는 송중기를 증오하는 미움의 싹이 돋고 있었다.

 

 그 증오가 우연찮게 폭팔한 날은 지난 휴일이었다. 가뜩이나 집안 구석구석을 배영으로 돌아다니던 휴일 늦은 저녁 시간이었다. 송중기가 나오는 맥주 광고를 보고서는 이유 모를 분노와 함께 허기가 폭발했다. 저녁에 분명 짜장 라면 2개나 먹었는데 송중기로 인해 그 모든 영양소가 빼앗기 느낌이었다. 할 수 없이 쪼리를 신고 모자 하나 달랑 쓴 체로 동네 노점 오뎅집으로 향했다. '대한 권투'라 써진 건물의 일층을 개보수하여 떡볶이와 오뎅을 주로 파는 '먹고 또먹고'에는 한 커플이 오뎅을 서로 입에 넣어주며 사랑의 썰을 풀고 있었다. 할머니에게 오뎅 일인분, 간과 허파를 함께 포장해 달라고 한 뒤 성찰은 옆에 있는 오뎅 하나를 뽑았다. 순간 오뎅을 자신의 애인에게 넣어주고 있던 남자가 쌍소리를 했다.

 

 "아.. 니미 팔뚝에 뭐야 이거.."

 "어... 오빠 괜찮아용! 미미가 닦아 줄게용!"

 

 성찰이 오뎅을 신경질적으로 뽑아 국물이 튄 것이었다. 자기 실수인지 몰랐던 성찰은 이상한 분위기에 살며시 고개를 돌렸다. 남자는 짧은 스포츠머리에 팔뚝이 김장철 무 2개를 붙여 놓은 것 같았다. 이건 마치 화장실에서 찔끔찔끔 대변을 보는 게 아니라, 변기가 부숴져라 한 번에 짧고 굵게 끝낼 것 같은 포스가 느껴졌다. 그 옆에 업소 여자가 휴지로 연실 그 남자의 팔뚝을 닦으며 인상을 쓰고 있었다. 성찰은 냉큼 고개를 숙여 사과의 표시를 하였다. 도마에 순대를 자르는 소리가 다시 들렸고, 상황은 그런대로 해재가 되었다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도 찰라, 여자는 앙탈스런 목소리로 오뎅을 자금자금 씹으며,

 "오빠, 이 오뎅 정말 죽여용!" 라 말했고, 남자가 답하길

 "맛있어 죽이지 말입니다." 라 했을 때, 성찰을 갑자기 '풋'하며 먹던 오뎅을 오뎅통에 넣는 기행을 저질렀다.

 

 도마질 소리가 멈췄고 남자는 '너 지금 웃었냐'라는 말을 하는 동시에 주인 아줌마는 학생이 뭐하는 짓이냐고 소리를 질렀다. 성찰은 양쪽을 번갈아 보며 자신은 죄가 없다고 말할 쯤, 남자가 한 발짝 다가옴과 동시에 살기를 느꼈다. 본능적으로 성찰에게 보인 것인 남자의 오른쪽 눈두덩이였다. 송중기가 가늠자로 눈을 흘겨 사격을 하듯, 성찰은 눈을 딱 감고 그곳을 향해 먹고 있던 오뎅 젓가락을 꽂았다. 미미라는 여자의 비명소리가 조용한 늦은 저녁, 온 동네에 퍼저나가는 나갈즘, '돈은 다음에 드릴게요'라는 말과 함께 성찰은 냅다 튀었다.

 

 쪼리가 아스팔트 때리는 소리에 맞춰, 뭔가 모를 쌍소리와 비명소리, 추격의 소리가 성찰을 먼 등뒤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성찰은 태어나 가장 열심히 뛰면서 이 모든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 찾아봤다. 역시 문제는 그놈의 송중기였다. 뒤를 돌아보지 않고 언덕길을 죽어라 뛰어 오를 때 성찰은 밤하늘에 보름달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문득 성찰이 생각하길,  그놈은 태양의 후예였고 자신은 저 달의 후예라도 되는 것 같았다. 결코, 무슨 일이 있든 서로 만나서도 안 되고 볼 수도 없는 존재로서 말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