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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의 키가 작아질수록/생각을 모음과 자음의 만남으로

관계의 직무유기

 관계의 직무유기

 

 소개팅이라 하자. 남자는 애써 마음에 들지 않는 여성 앞에서도 이것저것 고주알 미주알 이야기를 한다. 혹은 그 반대여도 좋다. 상대편은 도도히 웃어 넘기며 얼그레이에만 입술을 살짝일 뿐이다. 내 생각엔 아무말 없는 이 상대편은 관계의 직무유기 중이다. 왜냐. 이 소개팅의 자리, 관계의 지분은 50대 50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만들어가야 할 소개팅 자리라 생각 안 한다면, 차라리 자리를 일찍 정리해 주는 게 에의다. 그 자리를 좋은 기억으로 만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에게 덜 미안하도록 말이다.

 

 각종 자리에서 침묵을 못 견디는 편이다. 어떤 사람이 말을 하였는데 다들 침묵하고 있다면 괜히 가슴이 답답하고 초조하다. 회사에서 점심식사를 하는 자리도 특히나 그렇다. 일 이야기는 정말 하기 싫은데 회사 사람들끼리 마땅히 할 말도 없다. 이럴 때는 꼭 분위기를 띄울 화제거리를 던져야 하는 의무라도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애써 뭔가 하나를 꺼냈을 때, 반응이 없거나 다들 딴청일 때는 씁쓸히 밥이나 먹지만 말이다. 지금껏 엑셀로 통계를 내 본것은 아니지만, 말하는 사람과 말 하지 않고 듣기만 하는 사람은 정해져있다. 또한 말하지 않고 휴대폰만 보는 사람들이 얄밉기는 하지만 손해보는 경우는 없던 것 같다.

 

 이런 저런 이유로 말수를 줄이고 듣는 쪽으로 노력 중이다. 스스로도 듣기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여겨 왔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저런 모임이나 자리, 회의에서 말을 해봤자 손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일례가 회사 내에서도 이미지가 말이 없는 건 아니란 인식이 자리 잡았다. 별명을 어느새 MC 장호다. 악성 민원들을 상대로 말로써 밀리지 않는다나 뭐라나. 몇몇 좋은 피드백도 있었다. 첫째, 부장님이 무슨 일이 있냐고, 말이 많이 없어졌다고 하셨다.(일이 너무 많아 쓰러질 것 같다고 했어야 했는데...) 둘째, 국제매너 교육에서 대화 연습을 했던 상대방이, 말을 끝까지 주려고 노력한다, 편안한 분위기를 잘 유도해 준다는 소견을 줬다. 적막이 흐를 때, 침을 삼키며 한 박자 참았던 인내 덕분이다.

 

 단, 침묵을 해야 할 때와 관계에 있어서 직무유기는 구분이 되어야 할 것 같다. 토론이 그렇다. 각자 생각을 나누며 서로 발전을 도모하는 이 때에 듣고자만 하는 태도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가뜩이나 표정도 좋지 않아 '기분이 좋지 않나'라는 우려까지 끼친 것 같다. 잠언에 이르길 침묵은 금이라도 한다. 관계 속에서 역할을 다하는 노력은 금 보다 귀중한 사회적 존재로 이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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