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떨어뜨린 회사들에게 감사한다
문득, 지금의 회사와 내가 입사 지원서를 냈었던 회사들을 비교해 보곤 한다. 면접을 보았던 회사들을 기준으로 보면, 지금 회사가 훨씬 괜찮은 것 같다. 자기 합리화가 아니다. 최소한 안정적이면서, 업무로 인해 관계되는 타인들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취업의 길은 힘들었지만 지금의 길에 있게 해준 나를 엿먹인 그 회사들에게 감사한 마음까지 들었다. 이런 생각을 하면 떠오르는 최악의 회사와 임직원 한 명이 있다.
회사의 이름은 생각나지 않는다. 국내 신문사 이름에 뭔가를 붙였다. 있어보이기는 했다. 우리나라 기업 소식을 영문으로 번역하여 해외에 알려주는 회사라고 하였다. 누군가는 그 회사 면접 후기도 써 놓았었다. 설렌 마음으로 찾아간 회사는 일단 어디있지부터 찾기 어려웠다. 겨우 찾아 입구에 들어가려는 순간 문을 열 방법이 없었다. 보완이 된 자동문도 아니고, 벨도 없었다. 회사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밖에서 안으로 들어 갈 때 함께 들어갔다. 그 사람은 90년대 도서관에서 사용하던 대출카드 같은 것을 문 옆 보관함에 꺼내어 찍고 들어갔다. 그 때부터 불안하긴 했다.
일단 면접에 왔는데 인사과 직원 같은 사람이 없었다. 열심히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사람 한 명에게 물어 빈 책상에 앉았 대기하였다. 사무실은 낡아 보였고 소음이 심했다. 면접자로 보이는 여자 한 명이 와서 멀둥멀둥히 기다리기만 했다. 그러더니 한 사람이 와서 가장 먼저 온 나부터 면접을 시작하겠다고 했다. 아래층으로 내려가 사무실 같은 방에 들어가니 늙은 할아버지와 임직원으로 보이는 아저씨 한 명, 나를 안내한 사람이 함께 자리를 하였다. 그 할아버지가 사주로 보였다. 이렇게 나이 많은 분과 면접은 처음이었다. 면접을 시작하자마자 아저씨가 갈구는 말투로 질문을 시작했다. 왜 지금까지 취업을 못했냐, 봉사활동은 놀러 갔다 온 게 아니냐 등등 이런 대기업에서 경험하였던 기분 좋은 압박 면접이 아닌 인성공격이었다. 간간히 할아버지는 왜 서울에서 취업을 원하냐는 등을 물어봤다.
자꾸 나를 갈구던 아저씨가 다시 물었다. 자신을 동물로 표현해 봐라 해서 '곰'이라 했다. 느린 것 같지만 실제 연어를 관찰하고 낚아채는 우직함과 인내심을 강조하여 설명하였다. 그러니 대끔 "그동안 취직 못하고 방구석에서 누워 있어서 그렇겠지'라 했다. 자기도 말하고 무안했는지 PPT 50장 분량을 만드는 데 얼마냐 걸리냐 물었다. "내용을 제가 다 기획한 뒤 만들어야 하나요?" 라 반문하니 답하지 않아도 하며 궁시렁거렸다. 그 질문을 끝으로 면접이 끝났다. 집으로 오는 길에 마음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제발 떨겨 달라고 말이다.
하늘이 나의 바람을 외면하지 않아 다행히도 연락은 오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여러 회사들에 떨어졌고, 그 또한 감사한다. 출판협회 지원으로 지원한 곳에서 연락이 왔을 때 운전을 못한다니 아쉽다며 끊었다. 파주의 한 출판사는 사장과 부사장과 함께(실질적으로는 두 사람이 임원 전부였다) 면접을 봤는데 질문은 날카로웠으나 내 대답에 충분히 호응하고 알려주려 하였다. 그 출판사 책도 나중에 샀었다. 물론 파주까지 출퇴근 할일을 없게 해 준데 감사해 하면서 말이다. 면접 담당자가 슬리퍼를 신고 나를 면접봤던 쇼핑몰 회사도 잊을 수 없다. 요즘 주식 상장을 했다던 거 같은데 그러든지 말든지. 여튼 그때의 충격으로 나는 어떤 외부 손님과의 면담에 절대 슬리퍼를 신지 않는다. 최소한의 예의니까 말이다.
이런 것을 종합해 보면, 일도 많고 체계성과는 거리가 좀 있지만 지금의 회사를 다니는 것에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말하면 내일 또 회사에 나가려니 이런 생각도 해보려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참고로 나를 갈구던 그 아저씨를 출근길 지하철에서 본 적이 있다. 가방 하나 안 가지고 출근하는 것에 다시 한 번 그 회사의 수준을 나름해 보았다. 한 대라도 치고 갈까 생각하던 찰라, 갑자기 뒤를 돌아봐서 뜨끔해 하며 거사(?)를 접었다. 생각해 보면 인생의 은인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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